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_ 오찬호
내가 찾고있던 단어를 이 책에서 찾아냈다. 김치폭행.
김치폭행이라니 너무나 찰떡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표현이다.
그동안 목격했던 김치폭행이 얼마나 많았던가.
김치폭행에 동서고금이 없고, 외국인이나 어린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어린이들이 대체로 더 많이 당한다. 상당히 심하게.
요즘은 좀 덜 하려나 싶긴 하지만 최근에도 안타까워하며 본 적이 있어서.
고쳐야 할 습관인 편식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있어서 더 억울한 김치폭력,
거기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받았던 모든 이들이 떠올리며 경건하게 그 파트를 읽었다.
올해 나는 모든 것에 속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통렬한 자각의 순간을 맞이했달까.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나에게는 진실이,
그리고 이득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당연하게 격분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사회에서 길러졌던 것인가. 내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이
실은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는 걸 조금은 의심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이 되어 나의 목을 조르고 궁지에 몰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정하게 된 건 바로 올해.
너무 오래 속여진 상태로 있었다. 너무 오래 모른 척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나 자신에게 제일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 자신을 방임했던 시간들과 과거의 내 모습이 슬펐던 것도 같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에 끌린 건 이런 사정이 있었서였다.
나 역시 태어나자마자 된통 게다가 꾸준히 속아서 가뭄에 콩나듯 억울해하고 있던 참이니까.
역시 내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공고히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제법 응원이 될 듯하다.
사회, 세상, 나라의 책임을 전부 개인에게 떠넘기고 그 짐을 꾸역꾸역 짊어지는 것으로 모자라
아마도 무고한 스스로를 책망하고 반성했었다는 걸 깨닫고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지도...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지 않은가. 일단 자각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최소한 이제부터 속임수의 대상은 되지 않으니까. 자각한 속임수는 그저 분노의 대상이자 웃음거리일 뿐이니까.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속임을 당하고 있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과연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해져 본 적이 있다면
그분에게도 이 책을 추천. 그들의 의견에 반박할 수 있는 건 역시 통계와 표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반증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추게 할만큼 허를 찌르는 일격의 한마디다.
그 기술을 이 책을 통해 익혀보면 어떨까? 언제까지 답답증에 울분만 쌓을 순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이 과정에서 토론하는 사회의 기반도 다지는 데 힘을 보탤 수도 있다.
1+1의 세계가 멀리있지 않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이 책 역시 믿지 않는다.
이 책을 무조건 믿어버리면 이 책을 읽은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독서의 보람이 없어진다.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기도 하고. 다만 책의 결론 부분만은 기억하고 싶다.
대안이 없어도 비판할 수 있다는 것과 균형잡힌 시각의 함정, 나 역시 가해자고 될 수 있다는 것.
일단 무조건적인 신뢰를 경계하며 살아야 겠다. 의심하는 나 자신만을 최후까지 지지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물론 나 역시 틀릴 수도 있다. 그것만 자각하고 있다면, 틀린 부분이 있을 때 수긍하고 그 부분을 뜯어 고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거다. 오래되고 끈적거리는 의견에 발이 묶여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덧붙이는 순간을 맞지 않기 위해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 살아갈 것이다.
더 이상 속아넘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