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 _ 라이언 홀리데이
내가 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데에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내가 나에게 항상 옳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그러면 실수나 실패가 인류사에 이토록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을리가 없다.
이 책에서는 에고가 스스로에게 어떤 농간을 부려서 파멸의 길로 이끄는지 다양한 예시를 들어서 알려주고 있다.
작가 본인이 젊은 나이에 이미 성공가도에 올라서있었는데 순식간에 파산과 빚더미를 떠안게 되었고 그제서야
이 책에 쓰게 될 힌트를 얻었던 듯 하다. 에고가 적이 될 수 있다고. 간절히 바라는 게 우주의 기운은커녕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런 의도를 지니지 않았더라도 그런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에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 권의 책에서 내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정말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특히나 고민해보게 된다. 나는 대체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잘 되지 않은 경우는 무수히
많았고 그런 실패를 경험할 당시에 나는 나에게 어떤 속닥거림을 들려줬었는지 기억을 반추해보게 된다. 대체로
이 책에서 나왔던 수많은 사례의 하위호환버전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하위호환 버전이라 이 책에 등장하는
엄청난 규모의 실패를 겪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려나.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 중 하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대성공을
해서 엄청난 부를 상속받았지만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대는 족족 날려먹고, 돈이 몽창몽창 사라지는 일을 열심히 벌이
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설립한 정신병원에서 생의 최후를 맞이한 사람이 나오니까.
이 책의 의아한 점은 일반화라고 해야하나. 위에서 설명했던 극단적 사례 말이다.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을 저 카테고리에 넣어서 비참하게 만들려는 의향이 짙었다. 이 책에서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례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일부를 가져다가 크게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없잖아 보인다. 그 점이
'에고라는 적'을이라는 책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이런 성향은 미국발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보게 되는 패턴이라 작가의
의도를 빼내고 그 부분은 넘어가면 된다는 걸 알기는 한데, 볼 때마다 걸리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가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살살 들기 시작했고. 근거로 된 사례에 헛점이 존재한다면 그 주장에 오류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니까. 어쨌든 그런 부분들이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이 책을 다른 각도에서 뜯어보게 만든다.
그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음에도 이 책은 신선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신선했고, 다시 읽었을 때도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렇지 않은가. 내 안에 속닥거리는 거대한 적이 내 인생에 찰싹 달라부터 내 삶을 망치는 지름길로 안내하고
있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나를 믿고, 내 안의 직감은 따르라는 말이 많지 않던가.
이 책은 내가 나에게 도움하나 되지 않는 짓거리를 끝없이 해낼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의 세계를 열여줬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서 나에 대한 의심이 상당히 짙어졌다. 의도를 의심하게 되고. 나에게 내가 하는 변명인지에 대해 엄격해졌다.
그런 걸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스스로에게는 넉넉하다는 걸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아무리 엄격하게 해도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의 만 분의 일도 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의심과 의심과 또 의심을 때로는 다른 방향에서 작동시켜보기도 해야한다는 조언을 해줬던 책이다. 그래서 인상
적이었고. 그래서 전반에 걸쳐 동의하지 않았지만 가끔 이 책을 가끔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