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 읽기

요코씨의 말 1 _ 사노 요코, 기타무라 유카 (그림)

자몽도넛 2018. 8. 24. 09:07

'사는 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다.

사노 요코의 책을 읽으며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렸다.  

나는 나인채로 늙고, 나이를 먹었음에도 어른스럽지 못할지도 모르고,

지금 무섭고 겁나는 것은 그때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이값 못한다는 말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나이값을 못하기에 나온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잠정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린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나답게 살아가기로 했으니까.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있고, 내 생각의 시도때도 없는 변화라는 이름의 변덕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나이를 이만큼 먹은 내가 저지른 실수에 

스스로를 윽박지르며 다그치고 책망하는 일도 없어졌다. 

이제는 이래야 할 때라는 기대를 버리니까 나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진 듯 하다. 

그리고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좋다. 적어도 나는.

 

내가 영향을 받은만큼 사노 요코의 책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지하철에서 요코씨의 책을 읽는 사람도 본 적이 있는 정도로 인기있었고

그래서인지 사노 요코의 동화와 다른 에세이들이 잔뜩 번역되었다. 

많이들 사랑하고 있나보다. 그리고 나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있었다. 종이책도 사 읽고, 전자책으로도 구입했었는데

그것조차 깜빡할만큼. 

 

그러다가 만난 게 이 책이었다. '요코씨의 말'

그림은 기타무라 유카씨가 그렸다. 그도그럴게 요코씨가 그릴리가 없지 않은가. 

요코씨의 생각이 그대로 담긴 짧막하지만 묵직한 글이 그에 딱 떨어지는 그림에 

어울려 멋진 에세이 동화책이 되었다.  

 

오랜만에 읽은 요코씨의 책에는 요코씨만의 둥그런 날카로움이 여전히 살아있어서

반가웠다. 그러고보니 요코씨는 자신만의 생각을 관철하며 마지막 그 날까지 살아도

좋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줬었다. 그랬다는 걸 기억해냈다. 

 

이 책은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즐겨 읽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에세이의 정수들이 그림과 짧은 글로 모습을 바꾼 것이니까. 

이전 독서의 감상도 기억해낼 겸 기회가 되면 설렁설렁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그러다 내키면 다시 에세이도 돌아가 또 한번 읽어도 좋을테고.

 

처음 읽는 사람은 처음 읽는 사람대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기본은 그림책인만큼

2권이라도 짧은 시간에 금새 읽을 수 있다. 사노 요코 입문서로 이만큼 좋은 게

어디있을까. 이 책을 읽고나서도 좀 더 읽고 싶다면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찾아

읽으면 된다. 아직 읽을 게 잔뜩 남았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한가지 더 준비된 게 있다. 이 책은 NHK에서 제작했던 방송을

출판한 것이다. 기타무라 유카씨의 그림에 성우의 나레이션으로 된 방송도 챙겨보면

더 좋을 거 같다. 이 방송이 인기를 끌어서 3권의 책으로 나온 거 같다.

우리나라는 현재 민음사에서 2권까지 번역출간된 상태고. 연두색 책을 기다려본다.

 

오랜만에 만난 요코씨라 반가웠다. 긴 글로 읽었을 때와 그림이 붙은 짧은 글로

읽은 게 전혀 달랐다. 방송도 봤는데, 그 역시 다른 느낌이었다.

책은 신기한 거 같다. 비슷하면서 같지 않고, 같은 책이라도 시간을 두고 읽으면

달라진다. 이래서 내가 책읽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요코씨는 요코답게 살았다. 나는 나답게 살아야 겠다.

나답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답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다면 그건 나다운 게 아닌거다.

내가 불편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얼마만큼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나이값을

못할지 몰라도 나답게를 만들어가며 살고 싶다. 사노 요코 책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