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덴마크 _ 에밀 라우센, 이세아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사회'의 진짜 모습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복지에 대한 동경으로 북유럽을 하나로 뭉퉁그려 담은 책들이 제법 나왔었다.
그런 책들은 어느새 스웨덴 복지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했고, 어느새 덴마크의 의자에 대해 이야기하더라.
그리고 요즘은 휘게라던가 피카를 제법 자주 접하고 있다. 복지를 넘어서서 이제는 생활방식까지 범위를 확대중이다.
그러고보니 북유럽권역에 존재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분명 다른 나라일텐데 북유럽권역에 속하는 나라의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신뢰라는 것에 토대를 둔 선량함, 믿을 게 있는 구석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 같은 것들.
풍요로운 복지를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활양식이나 성격적 특성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공감하고 사고하고 살아가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 않던가. 숨돌릴 틈도 없이 돌아오는 학비가 없고 ,
몸이 아픈 것보다 몸이 아플 때의 의료비를 훨씬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국민에게 안락한 연금제도를 제공하는 나라에서 살면 여유의 정도가 지금과는 다를까.
선량하게 착하게 살아도 골수까지 뽑아먹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 나라 정도면 좋은거야. 여기보다 더한 데에서 태어났어봐라 더 큰일이다.
이곳에서 이런 류의 이야기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아, 일부 있을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저 소리를 주구장창 들어오며 살아왔었다. 거부감이 심했지만
거짓말도 100번을 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던가. 기정사실화까지는 모르겠지만
수도없이 여러사람에게 반복해서 들으면 평범하게 세뇌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저 말에 나 역시 세뇌당했다는 것을 화들짝 깨달은 건 얼마되지 않았다.
실제로 얼마전까지 정말 이 정도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럴리가!
일단 ‘우리나라 정도면 좋은거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는 아직 가야할 길이 왕왕 남아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복지가 기본이 나라에서 ‘우리나라 정도면 좋은 것이야’라고 할 리가 없다는 것은
핀란드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어떤 작가의 책을 읽고나서였다.
핀란드에서 누리던 것들이 기본값이었던 작가는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긴 체류를 결정하고나서야
자신이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상당히 높은 가치의 것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더라고.
그걸 보며 나도 깨닫게 된다. ‘우리정도면’이라고 말하며 비교하며 안도하는 자체가 우린 아직이라는 것을.
현재에 실존하는 부족함과 아쉬움, 갈망을 억지로 숨기기 위한 자기합리화와 변명이라는 것을.
무엇이든 좋아보이는 것에 금새 홀랑 넘어가는 나는 북유럽 복지도 호감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내것이 아닌 복지를 책과 구글링을 통해서 염탐을 했었다.
그러면서 체험한 적은 없지만 약간의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 책의 내용들이 완전히 새롭다거나 감탄할 정도의 신문물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부분들이 꽤 많이 등장해서 한번 더 짧게 복습한다는 느낌이었다.
북유럽을 구글이나 도서를 통해서 탐구활동을 해왔고, 체류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새로움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작가는 14년간의 한국에서의 체류경험이 있고
현재의 생활을 꾸리고 있는 장소도 다름아닌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게 어떤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신기했던 부분이 있다면
2017년 덴마크 이혼율은 46. 75%라는 것.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온라인으로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
이렇게 비교해보니 우리나라의 혼인신고와 이혼절차의 온도차가 심한 것이 바로 느껴졌고
혼인이란 ‘들어올 땐 니 마음이지만, 나가는 건 그렇게 안 돼’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발견을 했다.
하지만 2020년부터는 덴마크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3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친다고 한다.
이건 아이가 없으면 여전히 클릭 클릭으로 이혼이 가능하다는 거다. 우린 1개월 숙려기간. 왜 도대체?
혼인이 자유라면, 이혼 역시 자유로워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도 없는데, 이혼을 막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나가는 것은 막는 것일까?
호밀빵과 요거트가 가장 그립다고 한다. 나는 이 나라에서 살고있는데도 호밀빵과 요거트가 그립다.
지금도 빵을 좋아하고 자주 먹는 편이지만, 식사용 빵을 사려면 조금 험난하다.
식사용빵은 설탕 함량이 낮거나 없어서 단맛이 적어야 하고,
정제밀가루가 아닌 다른 재료를 사용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극적인 맛을 배제하고 만들어져서, 내가 원하는 쨈이나 부재료를 얹어서
다채로운 활용이 가능한 빵을 매일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구입하기를 원한다.
지금 여기에서 이걸 충족하려면 구워야 한다. 이 책의 작가처럼.
그런 빵을 매일 굽지 않아도 덴마크에서는 사먹을 수 있는 거 같다. 멋지다!!
요거트! 냉장고 한 칸 전체가 유제품으로 가득 찬 곳을 덴마크 마트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유제품을 좋아하는데. 우유, 아이스크림, 치즈, 버터, 요거트까지.
그런데 그게 가득 찬 냉장고를 마트에서 볼 수 볼 수 있다니!
이 두가지가 너무나도 그립단다. 나도 호밀빵, 요거트 너무 좋아하는데...
덴마크에는 한 발자국도 들인적이 없지만 어쩐지 나도 그리워진다. 모르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
이곳에 가게된다면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트를 찾아내서 유제품 냉장고를 넋을 놓고 구경하지 않을까.
좌측 상단부터 요거트를 하나씩 몽땅 맛보며 비교 점검해서 내 입맛에 딱 맞는 걸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서 소규모 자체 제작하는 농장의 버터와 치즈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구입해서 (구글이 있으니까 할 수 있다)
호밀빵에 곁들어 하루 삼시 세끼를 이걸로 먹을 것이다.
어쩐지 호밀빵과 요거트가 넘치는 덴마크에서는 적응이 엄청 빠를 거 같은 예감이 든다.
호밀빵과 요거트와 함께라니 멋지다. 산딸기도 채집할 수 있을까?
이미 덴마크는 유제품 파라다이스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맛있는 요거트 조합에 대해 과한 망상을 했더니
꼭 가보고 싶어졌다,
요거트에 꿀이랑 호두 타 먹는 거 좋아하는데, 뮤즐리도 맛있고,
딸기잼은 당연히 맛있고, 복숭아 통조림도 그럭저럭 괜찮다.
마트에 요거트 전용 냉장고가 있는 나라에는 분명 요거트 능력치가 높을 것이다.
요거트 철학에 대해서 심도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을테지. _ 내 요거트 망상에서 일부 발췌
이케아에서 파는 미트볼이 덴마크요리라고 한다. 프레케텔라라고.
이케아에서 팔아서 스웨덴 요리라고 깜쪽같이 믿고 있었다. 역시 선점하는 게 중요한거다.
미트볼 레시피가 첨부되어 있어서 이건 만들어볼 예정이다.
교적 탈퇴에 대한 것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교적에 속해져서 공식적으로 종교를 갖게되다니!
나에게는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소득세에서 교회세가 붙어서 세금도 꼬박꼬박 납부하게 된다고 한다.
교적탈퇴의 경험을 이 책에 적혀있다. 교회에서 탈퇴하면 인생의 여러 가지 행사에서 교회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탈퇴률은 그리 높지 않은 듯 하다.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서일까.
분명 나라면 탈퇴해야지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에잇 귀찮아!’하면서 그대로 유지할 타입이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살고있고, 살면서 교회시설 이용할 일도 어쩌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변명을 주저리 주저리 대면서 그냥 그 자리에 눌러앉는 나같은 사람도 있으려나.
북유럽의 복지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국가가 뒷받침해주는 의료와 교육을 포함한 복지가 탄탄하다면
과연 나는 이 모습으로, 이런 성격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국가는 개인의 최후의 보호자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대마초라던가, 도박이라던가 제 인생을 스스로 망치는
개인의 일탈을 저지할 수 있는거라고 한다. 그런데 보호대상자 입장에서는 맨날 혼내는 보호자가 아니라,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들고있는 짐의 무게도 덜어주고,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해주는 보호자의 모습도 원한다.
저런 사회에 살게되면 좀 덜 화내고, 불만도 줄어들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려나.
경험하지 못했기에 망상만이 늘어간다.
체험하지 못한 범위의 복지가 마법처럼 언젠가 실현되기를,
그래서 내 궁금증이 해소되기를, 모두가 좀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곳에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