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류노인이 온다 _ 후지타 다카노리
부제는 노후 절벽에 매달린 대한민국의 미래.
이 책 전부가 일본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부제를 반박할 수 없다.
사회문제를 다룬 일본 번역서를 많이 읽는 편인데, 단 한번도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대체로 내가 살고있는 사회에서 겪고
있는 일이었고,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몇 년 내에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문제가 발현되곤 했었으니까.
이 책은 노년의 빈곤을 다루고 있다. 이건 우리 사회가 이미 겪고 있는 일이다.
나이가 젊다면 ‘내 일이 아니야,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아’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현재의 젊은이들 중에 많은 수가
하류노인이 될 것이라고.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고용형태에서 비정규직이 만연화되었다. 알바에는 미니 알바라는 것도 생겼더라.
결혼을 통해 가족을 꾸리는 것을 포기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자신의 노후를
염려할 수 밖에 없다. 노후를 위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게 되리라.
그리고 이것은 실물경제에 직격탄을 입힐 것이다.
대기업은 괜찮은 것이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에서 부의 최전선을 쟁취한 이들이니까.
영세 자영업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걱정해야 한다. 실물경제의 위축은 이들에게
직격탄을 입힐 것이니까. 불행의 연쇄고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게다가 연쇄고리가 이것만이 아니고, 언제 어떻게 어떤 규모로 터질지 알 수 없다.
이런 과정에서 지금 젊은 사람들은 하류 노인 예비군이 될 확률이 높다.
이 책은 어떻게 하류 노인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에
쓰여진 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라고 한다. 아주 일부인데, 그 일부만으로 알게된다.
노인 빈곤에 처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평범하게 저축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예상가능한 범위의 일만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병이 걸릴 수도 있고, 가족 구성원에게 부양이나 간병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소비가 줄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그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소비의 규모는 줄이기 힘들다. 그리고 몫돈을 지출해야 하는 순간은 꽤나 있지 않은가.
그런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수년만 지나면 노인 빈곤이 시작되는 거라고 한다.
가난이나 빈곤에 대해서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동일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부모의 경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가 만연한 것을 보면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재력이 얼마인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자식이 동일한 교육기회, 같은 수준의
의료 혜택에 접근할 수 있고 최소한의 쾌적한 의식주가 지원된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도 청년 빈곤, 아동빈곤에 대해 다루면서
이때의 빈곤은 일평생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빈곤은 끝없이
대물림되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책임은 대체로 개인에게 묻는다.
노력하지 않아서, 게을러서. 빌 게이츠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다,
라고 했던가! 빌 게이츠는 자신이 이룬 게 많아서 가려져 있을 뿐, 금수저 출신이다.
그가 그 환경,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더라면 저만한 성취가 과연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빌 게이츠만이 아니다. 빌 게이츠보다 못한 재력의 가진 많은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한다.
그러는 정작 그 자신은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고생스럽지 않게 산 사람들이
꽤 많더라. 아니면 정말 운 좋게 빈곤에서 이른 시기에 탈출할 기회를 잡았던 사람.
그런 사람들은 쉽게 말하더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가난에서도 노력하면 되는거라고. 그리고 자신의 환경을 엄청나게 과소평가한다.
노력해도, 성실해도 빈곤한 경우도 많은데. 이들은 더 노력하지 않아서, 더 성실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할테지. 자기계발서같은 논리다.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모두 그 사람 탓이다. 무척 쉽지만 실질적 해결방안 하나없는 무책임한 논리다.
이런 논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텐데. 특히 149페이지부터.
책도 좀 읽고, 자료도 찾아보고 성실하게 생각해서 빈곤에 대해 ‘노력하지 않아서,
게을러서‘라는 짧디 짧은 말로 그 빈곤 뒤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던지는 말은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위축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초기에 대응했으면 해결하기 쉬웠던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사회적 비용은 그렇다쳐도
인간으로서의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 복지 축소를 주장할 때 한번쯤 여기에 대해서도
고려해봐야 한다.
노후 빈곤에 대한 원인, 현실, 그리고 대처법과 보완되어야 할 제도 등에 대해여
꼼꼼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까 읽어보면 좋겠다. 이 책은 복지에 대한 다수
사람들의 이해와 합의를 위해 쓰여진 게 아닐까 싶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공유하고 그를 통해 다양한 도움과 혜택을 위한 지원의 확충을 도모하려는 것이리라.
우리 역시 복지에 대해, 노인빈곤 문제에 대해서 모른 척 할 수 없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빈곤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더더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고착화된 사회문제는
곧 그 사회의 얼굴이 된다.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구성원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그 사회가 건강할 리가 없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불행한사회에서
축적된 분노와 좌절의 날끝은 언제가 자신에게도 날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