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 읽기

당선, 합격, 계급 _ 장강명

자몽도넛 2018. 8. 2. 09:00

과거급제라는 게 소설세계에도 있었다. 너무나도 공고하게!

1:4이상의 경쟁률이면 속이 울렁거리지라 이 책을 읽는동안 약한 멀미를 했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재미라는 것이 수상작을 심사위원과 일부 편집자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건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맞는 것이지

나에게 재미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어마무시한 경쟁률에서 떨어진 작품 중에서

내가 밤을 꼬박 새우고 재미있는 책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해리 포터도 10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마션 역시 출판사에서 몽땅 거절당해서 블로그 연재로 인기를 얻었고

결국 출판을 포함해서 영화화되기까지 했고.

재미있게 봤던 소설 중에서 수상작이 얼마나 되었던가.

단언컨대 말한다. 없다!

과거에 읽었던 수상작들을 토대로 짐작해보건데 나는 심사위원들과 취향이 안 맞다.

그러다보니 수상작 소설을 더더욱 잘 읽지 않게 된다.

이러다 소설 읽기를 그만둬 버릴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다.

고전 읽기는 진작에 때려쳤고, 새로운 소설도 엄청 많이 팔려서 호기심이 생기거나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저 지나친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소설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대체로 수상작들은 재미없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책도 단언컨대 재미없다.

소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기는커녕 인류애를 몽땅 잃게 만든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무지에 애처롭게 피어난 허약한 한 송이 꽃같은 희망만을 억지로 쥐어줄 뿐이다. 허탈하다.

나에게 수상작의 이미지는 대체로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수상이라는 이력을 갖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맞춰나가는 게 서글퍼졌다.

저 희박한 경쟁률을 뚫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게 해야하는 것일까.

거기에 몸을 맞추는 사이에 얻는 것도 있겠지만, 분명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있을텐데.

그리고 그 버린 것들에 왠지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반짝이고 재미있고, 인류애를 앗아가지 않는 작품도 좋아한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반쯤 잠들어있으면서도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들을 기다린다.

굳이 인류애를 상실할만한 좌절과 절망을 주는 책들만을 열심히 읽고 싶지도 않다.

그런 멀미 날 것 같은 부류는 소설 외에서도 다루고 있는 분야들이 많이 있다.

영화제 수상작도 대체로 이런 부류고, 소설보다 더 한 현실을 담은 책이나 다큐도 있다.

게다가 그런 부분에는 끝판왕이 있지 아니한가. 노벨상 말이다.

굳이 수상작이 아니어도 좋은데, 그런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나서 의문이 들었다.

수상이라는 경쟁을 거치지 않고 첫 작품을 내려는 작가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들이 소설가로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시스템에서 정말이지 가능할까.

과연 독자가 그를 알아보는 게 실현가능한 일일까.

 

 

나는 역시 경쟁이 싫다. 1:4 이상의 경쟁이 정말이지 몹시 싫다.

내가 그 이상의 경쟁에서 성공해 본 적이 없다.

‘1:100이라도 내가 1이 되면 돼!’라는 순진한 소리를 지껄이면서 맨 몸으로 바위로 뛰어들던

계란같은 내가 있었다. 그 과거의 내가 떠올라서 이제는 수상작인 책은 못 읽을 거 같다.

1:100에서 내가 99가 되는 건 엄청 당연한거다. 하지만 1이 되리라는 부질없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나는 무던히도 애를 썼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 않는 게 좋았다. 1이 될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갖춰져서 도전해도 1이 되긴 힘들다.

게다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실패확률이 더더욱 커진다.

수상작 하나가 뽑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가떨어졌는지, 얼마나 좌절했을지,

스스로를 넘칠만큼 원망하고 후에야 비로소 미친 시스템 탓이었음을 깨달았을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이

언뜻 보인다.

99에 속했던 나는 이제 99인 작가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내가, 아니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서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찾으러 가겠다.

장르를 뛰어넘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책을 읽겠다.

그러니까 저 엄청난 경쟁률에 슬퍼한 적이 있는 작가분이 있다면 힘내셨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색감으로 빛나기를. 그래서 내가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만이 아니다. 미쳤나싶은 경쟁률에서 나를 잃어버린 적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만들지 않은 룰안에서 고통받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