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나이트 _ 요시모토 바나나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캐릭터와 상황들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다...? 정도의 감상이었다.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사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친구였던 남자가 이제 곧 죽으니까 아이를
갖자는데 덜컥 그러자고 한다. 그리고 진짜 실행한다. 어...뭐지? 이때부터 이상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첫사랑과 헤어진 이유도 저건 그거였다. 잠수이별. 어려도 폭력을 사용하는 비정상인에 맞서 싸울만큼
강하고 결단력이 있었던 사람이 잠수이별이라니...
어딘가 앞뒤게 안 맞아서 삐걱삐걱 거리는데 작가는 한없이 따스하고 자상한 시선으로 이 사람을 좋은
인간으로 만든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영적인 변명까지 치밀하게 만들어주며.
그러다가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이유로 다시 첫사랑과 이어지는 과정이 이 도타운 책에 실린 이야기다.
요시모노 바나나 책은 신기하다. 취향도 아닌데 읽다보면 그럭저럭 재미있다. 때때로 네 맘대로 살아라,
라는 구미에 맞는 말도 해줘서 그런가. 엉망진창으로 망쳐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책 속에 녹아
있어서일까. 둘 다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결국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리 읽게된다. 읽는 동안은 그럭저럭 재미있다는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도 읽었고, 최근에 보헤미안 랩소디도 봤고 흐름을 타고 요시모토 바나나도 읽어
보았다. 내 안에 작은 복고바람이 불었었나보다.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가 젤 재미났다. MX관에 가서
보는 거 강력히 추천한다.
앞으로 요시모노 바나나도 히가시노 게이고 책도 읽게될런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곧잘 읽었었는데
이번 독서를 마치고 이것으로 이들과 헤어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에서 등장하는 비현실적으로 바르고 선량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살아가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타인을 만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드는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름답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고통과 아픔은 건조하고 간략하게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이후의 성장한 삶이 포근하고 편온하게 그려져서 고통과 아픔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평탄하지 않음이 분명한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거침없이 선택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래서는 안된다. 자신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안전장치없이 무모해지는 건 역시나 위태로우니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에서는 역시나 인간에 대한 넓고 깊은 불신을 읽었다. 저건 결코 해피엔딩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꽤 많았는데 이번 책에서도 무한한 불신을 감지했다. 인간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를
가진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에 대한 불신을 소비하며 살고싶진 않아졌다. 나는 내가 더 이상 냉소적이지
않기를 바라니까.
그리고 재미가 없었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읽는 동안에는 재미있지만 독서 후의 뿌듯함이나 만족감이
이전과 같지 않다. 분명 작가가 변했거나, 내가 변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럼 이 책에서처럼 운명처럼 다시 만날 때까지 이들 작가와는 당분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