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장면에 등장한 게 슈지고, 슈지가 주인공같기는 한데.

그게 맞다면 주인공에게 작가는 확실하게 혹독한 시련을 주고 있다.

슈지에게는 소라라는 사촌이 있다. 그건 성이 같다는 것. 이 만화의 배경은 일본이니까 같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거다. 잘난 애가 나이면 괜찮은데, 그 잘난 애한테 밀리고 치이는 녀석이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경험을

반복하게 될 수 있다. '너는 왜 그러니?'라며 무한의 비교질 속에서 어떤 밝고 긍정적인 인간조차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하다. '군청에 사이렌'에서 보여주는 패턴이 딱 이 모양새다.  

호랑이 없는 골짜기에서 왕노릇하던 여우와 같이 강자 시절을 맞아 맑고 밝게 살던 슈지(앞으로 청정지역 슈지로

명명)는 사촌 소라를 갑자기 만나게 되고 반가운 마음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알려주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야구.

그때까지는 즐거웠다. 모두가 행복했다.

하지만 소라는 타고난 천재. 거기에 노력형. 아마도 유전적 요인까지 가세해서 슈지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평가를

갱신해버리고 그 구역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자리는 원래 슈지의 것이었다.

그후 슈지는 삐뚤어질대로 삐뚤어져서 야구도 때려치고, 표정도 못 숨기는 졸렬한 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다. 그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사건은 아직 1권에서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것까지 한몫 더 해서 슈지의 좌절감과 절망은 끝을 모르고 지하로 구덩이를 파는

중이다. 그 무한의 하강나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역시 그런 감정이 그다지 이 책에서도 아름답지않게

그려지고 있다. 표정도, 감정도 숨길새도 없이 그대로 표출되는 걸 이 책에서 볼 수 있는데 피해의식에 동반되는

복잡하고 어두운 감정들이 다채롭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에 잡아먹히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보여질 수 있는지를 1권에 걸쳐 그려내고 있다.

 

저 정도까지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촌 소라와 굳이 슈지가 함께 있어야 하나? 라는 지극히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문이 떠올랐다. 물론 소라는 잘못한 게 없다. 그저 잘났을 뿐이다. 게다가 성격도 좋다!

하지만 누군가와 만나서 괴롭다면 그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만나지 않던가, 그 상황을 극복하던가.

이 만화는 분명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야 만화가 계속될테니까.

하지만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전자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슈지가 처음으로 택했던 방법.

함께 있어서 즐거운 사람들 속에서 행복해지면 되는거다. 야구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 녀석이 없는

곳에서 재미있게 하면 되니까. 왜 굳이 싫은 녀석과 엮여서 그걸 극복하려고 하는지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니까. 감정과 시간의 낭비는 자신에게 엄청난 손실이니까.

행복함과 즐거움 속에서 힘을 얻어 강해지면 소라들을 만나더라도 트라우마의 발현없이 평범하게 나답게

평소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좋은 건 그 사람이 소라인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

소라라는 존재를 만들지 않고 나대로 나만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어그러진 인간의 군상을 1권 내에서 속도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시원시원한 속도이고, 비굴하고 못난 모습도

가차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주인공이라고 봐주는 게 없다는 점도 맘에 들고.

앞으로 슈지는 어떤 선택을 할지, 그래서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소라를 극복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지도 알고 싶고. 그러면서 성장하려나? 일단 성장물이니까.

 

슈지도 소라도 잘못된 경쟁사회에 떨어져서 몹시 고생하는 내용이다. 그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애들인데, 이 놈의 경쟁사회는 인간관계를 몽창몽창 망가뜨리는 게 취미이다보니 이들 역시 그리된다.

야구는 여러 명이 해서 즐거운 놀이인데, 초등학교 때의 성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두 명의 어린이가 휩쓸려서 엄청난 상처를 받고 그것이 트라우마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쨌든, 원하지 않는 필드에서 경쟁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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