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가족 안에서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알콜중독이 불러일으키는 끔찍함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술은 나쁘지 않다고 했나. 술을 퍼마시는

인간이 잘못한거지.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술도 잘못한 거 맞다. 술은 뇌를 망가트리고 판단력을 떨어트린다.

백치에 가까운 상태로 술을 거부할 수 있을리가. 그래서 술에 빠져 인생을 망치고. 사람을 짐승이나 괴물로 만드는

술이 저 혼자 빠져나가서 비난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가 의문이 든다.

...저 혼자 인생을 망치는 건 괜찮다. 스스로를 파괴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다른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아니다. 대체로 주정뱅이들은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사회적 동물 어쩌고 하지 않던가. 가족이 있고,

가족을 만들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고 직장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난다. 주정뱅이들도 사회 일원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영향력을 끼치기도 한다. 특히 가족에게 치명적이다. 이 책에서는 알콜중독자가

어떻게 가족들의 삶을 망가트리는지를 보여준다.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그리고 죽어서도 계속 영향을 미치더라. 

그러고보니 알콜중독자의 자녀는 본인이 알콜중독자가 되던지, 알콜중독자인 파트너나 배우자를 고를 확률이 꽤

높다고 한다. 이 책의 작가도 그랬었고. 본인이 알콜중독자가 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술을 마신는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었으니가. 하지만 알콜중독자에 폭력까지 쓰는 남자와 9년을 만나더라. 저런 쓰레기를 만나나 싶은 놈

이었다. 알콜중독에 데이트 폭력범 거기다 마마보이. 심약한데 자존심만 높아서 그걸 유지하려고 작가의 성취를

후려쳐야 하는 놈이니까 쓰레기가 맞다. 동생이 펑펑 울며 말려도 헤어지지 않더라. 작가는 알콜중독자의 자녀가

겪을 수 있는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아빠는 알콜중독이었고, 엄마는 종교에 빠진 사람이었다. 아빠의 알콜중독에 가려졌지만 엄마도 보통을 넘어서는

수준의 상처를 주더라. 그리고 그 기괴함이 학대의 정도였다. 그리고 자살을 한다. 그 이후에 엄마가 졌던 짐은

모두 작가가 떠안았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고 돌봐야 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돌봐야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어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은 전부 아이가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진학을 의논할 대상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매일 취해서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빠와 아빠의 주정뱅이

친구들이 주위에 있는 어른의 전부였다. 선생님이나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인생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건가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위기의 순간일 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 대체로는 때에 맞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다. 힘들 때는 더더욱. 그도그럴게 위험한

아우라를 뿜뿜 뿜어내고 있는 사람 주위에 사람 자체가 모여들기가 힘들어질테니까.

 

 

 

그리고 성인이 된다. 자유를 찾아 훌쩍 떠나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한데, 떠나지 못하더라. 진학도 취업도 하지않고

알바를 했고 아빠의 일을 돕고 어린 동생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이 마모되어가면서까지 그 집에서 버티며

살아간다. 그 시기에 쓰레기 남친을 만나고. 아빠랑 비슷한 남자을 만나버리다니. 게다가 폭력까지 당한다.

읽는내내 마음이 무겁고 슬퍼지는 책이었다. 애정을 갈구하는데 그 애정을 찾을 곳이 한군데도 없는 그 고독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내 답답해

지기도 했고. 나쁜 부모를 만난 것만으로도 넘칠만큼 억울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영향력을 평생 죽을 때까지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니. 그리고 그게 대물림이 되지 않겠는가. 끔찍한 순환시스템이다.

 

 

결국 술이 아빠를 잡아먹고 만다. 술에 먹혀버렸다. 식도암에 걸려서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뒷치닥거리까지 모두 작가가 책임졌다. 아빠가 운영하던 회사에는 빚이 있었고, 병원비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대책없는 아빠 덕문에 현실적인 문제를 언제나 처리하며 살아왔기에 그런 계산을 하는

게 습관이 됐을텐데. 그 순간에 순수하게 슬퍼하지 못하고 돈문제를 걱정하는 자신에 대해 탓하는 걸 보며

작가는 너무 착했던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죄책감과 책임감이 그를 현실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꾸린 것도 아닌 가정에 몸이 묶여서 함께 좌초하고 있었다.

 

 

 

이 책이 더 슬퍼지는 건 작가가 글에서 어딘가 모르게 체념이 느껴져서다. 달관한듯한 체념한 듯한. 하지만 여전히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어디에서든 받을 수 없는 것인데도.

부모가 죽고나서 자신을 탓하는 시간도 길었으리라. 아빠가 죽고나서 2년이었다. 엄마가 죽고나서는 그보다 훨씬

길지 않았을까. 그 죽음이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을 거 같으니까.

 

 

 

술주정뱅이에 놀라울 정도로 너그러운 사회에 살아가고 있어서 그들이 얼마만큼 해악을 끼치는지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이 책을 읽고나서 들었다. 술을 마셨다면 더 높은 처벌을 해야할 거 같지 않나. 그런데 정반대다.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형사적 처벌이 경감되고 사회적 비난도 심하지 않다. 아침에도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밤에는 물론 있다. 가끔 낮술 마신 사람들도

타고. 음주운전을 해서 사람을 살해하기도 한다.  

어째서 주정뱅이에 관대해도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만큼 주정뱅이의 수가 많은 것일까. 그래서 이토록

주정뱅이에 우호적인 것일까.

하지만 단호하게 안된다. 주정뱅이는 나쁘다. 범죄에 관련되어 있다면 확실한 처벌을, 가족으로 선택의 범위안에

든다면 무조건 탈락시키도록 하자. 그리고 주정뱅이들은 왠만하면 술이랑 결혼해서 술이랑 행복하면 좋겠다.

사람과는 결혼하는거 아니다. 그리고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때도 술을 정도를 넘치게 마시는 사람은 무조건 피하고, 

배우자라면 아이가 생기기 전에 얼른 그곳에서 탈출해야 한다. 과도한 음주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구글에서 알콜중독 관련 논문을 몇 개 읽었더니 주정뱅이에 대한 반감의 골이 깊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사회를 몫까지 매섭게 비난하게 되리라. 연거푸 술 4잔 이상 마시는 사람이랑 같은 공간에 있지 말자.

적정 음주량은 하루 2잔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이상 마셔서 취해 나가떨어지는 사람을 눈을 세모꼴로 뜨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력을 이제 늘려야 할 때다. 이제 좀 엄격해져도 되지 않나.

 

 

이 작가와 같은 입장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음주문제로 큰 상처를 받고 마음에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읽고, 다른 자료들도 찾아봤으면 한다. 자신의 겪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다. 하지만 내 탓이 아니라도 나에게, 내 인생에 영향을 준다. 그것도 아주 큰 영향.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구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함께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 이미 충분히 자신의 몫인 아닌 비용을 치뤘다. 더 이상은

지불하지 말자.

 

 

며칠전에 카레를 만들었다. 슈퍼에서 파는 카레가루로. 그리고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오! 스파이스 카레'

 

 

딱 3가지 향신료만 있으면 기본 카레는 만들 수 있는 모양이다. 터머릭, 카이엔 페퍼, 코리앤더.

향신료가 있는 부엌이란 언제나 멋지다. 상상의 공간에서는 ㅎㅎ

이미 그 로망은 실현해 본 적이 있더랬다. 그리고 절반정도 남은 향신료를 버렸다. 유통기한이 훌쩍 지나서.

열심히 쓰긴 썼는데 자그마한 병이라도 바닥까지 비워지는 게 더디기만 하더라고.

이게 카레 향신료를 선뜻 구입하는데 망설여지는 요인이었다. 남은 향신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저 기본 3가지 파우더만 사들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커민씨, 카다멈, 클로브까지 내차 구입할테지.

그리고 향신료로 카레 만들기에 대한 열정이 식었을 때를 생각해보게된다. 대체로 이런 때는 오는 법이니까.

남은 카다멈과 클로브는 와인에 몇 알 던져넣고 끓여먹거나 밀크티를 만들어 먹을 때 쓰면 되는데.

커민씨와 터머릭, 코리앤더가 남는다면 어떻게 활용해야하나 아득해진다. 

중식이나 동남아시아요리? 카레에 매달릴 수 밖에 없을까?

취미를 쉽게 바꾸고, 찰싹 달라붙어서 끝을 보는 성미가 아니어서 시작하기 전에 요런걸 궁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기도 한거고. 이제까지의 카레에서 향신료 카레로 완전히 넘어갈 것인지 확실한 대답을

얻고 싶었다.

 

 

 

20년동안 카레에 매달린 사람답게 이 책에 있는 레시피는 쉽고 간단했다. 양파를 타기 직전까지 볶는 게 가장

까다로운 과정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저만큼 안 볶고 생략해도 괜찮을테니 그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간단해진다.

주재료에 따라서 부재료가 살짝 첨가되는 걸 외에는 기본 공식이란 게 존재하고 있어서 향신료 몇가지만 구입하면

당장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분이라는 걸 안다. 요리책은 영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장난판이

되고있는 부엌이라던지, 요리에 걸리는 시간과 재료비 상세내역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저런 기분은 안 들텐데.

요리책은 언제나 깔끔하고 간략한 과정이 사진으로 실려있어 이내 착각하고 만다. 하지만 기억해야한다. 부엌의

대혼란을 겪는 건 물론 나. 치우는 것도 나, 남은 향신료를 처리해야 하는 것도 나.

실패해서 맛없는 카레를 먹어야 하는 것도 나.

 

 

 

작가의 카레에 대한 애착은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향신료를 사러 백화점에 갔었던 순간이라던가,

비싼 향신료를 용량을 훌쩍 넘겨 사용했다는 에피소드 같은 것을 들려주는데 아마 이 작가는 카레에 대한 잡담을

사흘밤낮을 카레만 먹으면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도그럴게 1년 넘도록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점심을 인도음식점에서 먹었단다고 하니까. 근데 이거 정말일까.

이게 가능해? 좋아하면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일단 그렇다치고. 그렇게 1년을 매일 출근을 하며 식당사람들과 안면을 

익혔고 마침내 그토록 궁금해하던 걸 하나씩 알아내간다. 스파이스는 무엇을 쓰는지부터가 시작이었다. 작은 부분부터

살큼살큼 경계를 허물며 결국에는 주방까지 들어간 것처럼 보이던데. 그걸 1년동안 매일 점심시간에 했단다. 대단하다.

이 에피소드가 진짜라면 카레 레시피도 마음에 들었지만, 작가의 카레에 대한 집착에 대한 에피소드를 더더 듣고 싶다.

분명 저것만 한 게 아닐텐데. 20년이니까. 게다가 작가는 인도인이 되고 싶어하기까지 한다. 카레를 잘 만들고 싶어서. 

인도에서 수혈을 받고 카레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망상까지 할 정도니까 이 작가에는 분명 이 책에서 미처 쓰지 못한

어마무시한 용량의 카레경험치가 있을테다. 그게 궁금한데. 

 

 

그래서 좀 더 찾아봤는데 아마존에 이 작가가 쓴 카레책이 엄청 많다. 카레가 표지에 등장하고 제목에 스파이스가 있는 

걸로 봐서 이 카레쟁이가 맞는 거 같다. 책이 40권 정도 있다. 그리고 유튜브에도 영상자료가 꽤 많이 나온다. 이력에

방송이 몇 개인가 있던데 그것들인가보다. 테드도 있더라. 테드를 봐야겠다. 이 책에서 들려주지 않은 카레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테드를 보고나서 다음번 백화점에 갈 때 향신료를 사올 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해야겠다. 향신료의 질은 복불복이라고

작가가 그러던데, 백화점에 가면 복의 확률을 좀 높일 수 있을까해서. 물건 잘 골라뒀겠지라는 딱 각설탕만큼의 기대.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 뿐이라고 오마에 겐이치가 말했다.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이것 외에는 인간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특히나 결심이나 다짐 이런 건 의미없다고

그랬다.

 

 

내 일생의 취미이자 소일거리인 결심이 무의미했다니!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까 신선하더라고.

그래서 한결같이 이런 인간으로 동일성을 유지하며 쭉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서 변화를 모색하기로 했다. 대변신!

작년에 저 3가지를 해보려고 계획했고 1가지는 이미 이루었다. 이사를 했으니까. 올해 안에 다시 사는 곳을 바꾸게

될까. 일단 계획은 있다. 인간이 바뀌어야 되는데, 새로 이사온 것이 스며들듯 적응을 해버려서 곤란하다. 이전에 살던

곳은 생각도 안 난다. 가볼만한 동네의 식당은 전부 가봤다. 슈퍼나 장 볼 곳도 개척했고. 이제 동네는 클리어해서

슬슬 주위 동네로 관심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5년은 산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이 바뀐다며요?! 그래서 진지하게 다시 다시 곳을 바꾸는 걸 검토 중이다. 사는 곳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꿈쩍하지

않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알래스카에 가서 오로라를 본다해도 나는 이대로일지도 모른다.

오로라도 별거 없네...예쁘기는 하네...오로라를 보며 분명 요런 생각을 할테지. 나란 인간은.

 

 

이사는 그렇다치고. 그럼 남은 건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니.

음...늘 책을 읽고 있다만. 미드 말고 다른 나라 드라마를 볼까나. 결코 실존인간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이게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도 해볼만 한 것 같다. 어찌나 규칙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지 그 성실함이 대견할 정도다. 이제 남은 두 개에 일단 집중하는 수 밖에 없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명쾌한 단문은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말이 이 책에

실려있다. 난문쾌답. 짧은 단문을 엮은 책인데, 다른 책에 실렸던 명문의 정수만을 모아놓았다. 100권의 저서를 모두

읽는 건 무리일테니 읽을 책을 고르는 동안 이 책을 먼저 읽어봐도 좋겠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실린 그 책을 읽으면

되니까. 단문으로 되어있고, 여백도 많고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물론 글자만 읽는다면. 하지만 그 문장에 대해서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고 궁리를 시작한다면 예상보다 독서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짧은 단문임에도 불구하고 한 권 내내 생각하라고, 스스로 생각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책이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끄집어내게 되더라.

 

 

나이크 창업자 필 나이트의 말이 이 책에 실려있는데 그것도 인상적이었다. 사업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주던데.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면 된다고. 너무나 맞는 말이다. 저 말이 틀릴리가 없지 않은가.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시도하고 또 다시 시도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평균 창업 횟수를 고려해봤을

때 저걸 실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성공과 직결되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재기의 기회를 주는 사회이냐도

고려해봐야 한다. 한번 길에서 어긋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였고 그 글을 쓰던 때도 적지 않은 나이였을 때였다. 유명하고 성공한 작가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는데

그런 글을 쓴 것을 보며 내가 사는 사회는 어떤 곳인가 생각했더랬다. 한번 삐긋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 돌아가야 되나. 흘러간 시냇물에는 다시 발을 담그지 못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고. 다시 돌아간다면 퇴보같으니까

내침김에 앞으로 내달리거나 옆으로 폴짝 뛰어보는 건 어떨까. 백도는 역시 성미에 맞지 않으니까 별로 크게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니지만 한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휙 달라져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씁쓸하기는 하다.

거기에서 오는 불안과 체념을 알고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거니까. 그런 사회에서는 보통을 강요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보통이 진짜 보통이 아니던데. 평범이라는 이름의 고난이도 의자뺏기 놀이 중.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면 된다는 말은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결국은 쟤가 이기나 내가 이기냐의 문제. 인생만사

존버인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보면 결국은 손에 쥐게 된다는 것일까. 안되면 말고. 그리고 

그만큼 했으면 스스로도 납득했을 거 같고, 후회나 회한도 없을테니.

 

 

 

기다린다. 미룬다. 이런 단어도 몹시 싫어하더라. 이건 이제부터 확실히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무슨 인생과

비지니스의 독약같은 느낌으로 사용되는 것 같더라. 미루지 말라거나, 기다리지 말라거나 이런 말은 다른 사람들도

다들 하는 말이니까 그려려니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말하는 부분들도 있어서 작가의 최신작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인간문화재가 될 거 아니라면 한우물 파지말라고도 하고. 현재의 교육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그리고

아이에게 해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어른보다 아이가 시대에 민감하고 아이가 옳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멋졌다. 내가 봐왔던 거의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시대에 가둬두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자신의 기준과 세대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에 아이들을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신기한 건

그 자식들이 커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 아이세대가 부모세대보다 똑똑하고 시대를 훨씬 잘 읽을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부모세대의 실패와 다름이 없다. 부모세대를 발판삼아 그 위에 올라선 세대니까 이전보다

영특하지 않을리가 없지않나. 하지만 요즘 애들은 어쩌구는 사라지지 않고있다. 요즘 애들이 어쨌다고. 그럴만

하니까 그러겠지. 어쨌든 애들은 그냥 놔두면 좋겠다. 도와주기는 커녕 망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나 역시 고루한 생각들을 내세우다

꼰대질을 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 고집쟁이에 억지쟁이가 된 나 자신이라니 싫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마에 겐이치 책을 읽으며 굳이 그런 마음의 준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과 여력으로 시대를 읽고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미루지도 말고.

죽을 때까지 시대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며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를 하며 사는 것도 싫다.

그래서 인간이 바뀌는 3가지 방법에 무척이나 끌렸나보다. 바뀌고 싶다. 결심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쓰는 방법도 변화를 줘야겠다. 지금 당장. 앞으로는 무조건 지금 당장!

 

 

 

100여권의 저서가 있는 작가인데 우리나라에 출간된 건 30권 미만이다. 그 중에 절판된 것도 있는데다, 이북으로

나온 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최신서적을 읽고 싶은데, 번역출간이 될지 안될지도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유튜브다.

...일본어다. 영어자막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오마에 겐이치 공식계정이 있으면 딱 좋은데, 영어자막도 있을테고.

여기까지 찾아봤지만 아직 구글과 기타등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를 잇는 세계 3대 경영 구루

라는데 여차하면 피터 드러커나 톰 피터스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도 되고.

 

 

단문으로 되어있는데 그 문장을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그리고 그게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3번 정도 읽었는데 시간이 요것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더더욱 좋다.

일주일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 1년째 읽고 있는 책이 있어서 오랜만에 읽은 여백 많은 책이 반가웠다.

여백은 내가 생각으로 채우면 되고. 아직 새해모드라서 긍정적이다.

 

 

 

 

 

   

 

 

정리할 책상은 없지만 일단 읽어보았다. 이사를 하면서 책상도 정리했서 없다. 뭐...책상만을 정리한 건 아니다.

기타등등을 이사하기 직전에 정리하면서 고생을 한터라 당분간은 가구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듯 하다.

가구는 들이는 것도 힘들지만, 버리고 처분하는 건 두 배 정도는 더 힘들다. 이런 경험 덕분인지 새가구를 들이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 술렁거리지 않고 조용하다. 지금 맘으로는 앞으로도 그런 맘은 영 들지 않을 듯. 

버리는 데 상당한 비용을 치뤘다. 사는 데도 돈 쓰고, 버리는 때도 돈 쓰고 이게 무슨 멍청이짓인가 싶었고,

그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해 가구를 사고 싶은 마음을 쫓아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책상이 없어도 살만하다. 카페와 기타등등에 테이블이 참 많더라고. 커피 한잔 가격으로 테이블을 빌려서 그걸 내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집에 식탁도 있고. 식탁만큼은 영원히 정리하지 못할 거 같다. 식탁이 있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것일지도 모르고.

책상이 없었던 적보다 있었던 적이 훨씬 길었음에도 아직까지는 책상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나는 안 불편한데 휑한 방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긴하더라만. 내가 안 불편하니 됐다.  

언젠가 간절하게 필요해지면 그때 다시 생각이 바뀔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책상이 없는대로 살아갈 예정이다.

 

 

 

책상이 없긴 하지만 이 책은 어쩐지 읽어보고 싶어지더라. 책상이 있었던 때 정리를 참 못했으니까. 책상이 있었기에

자잘한 내 소품들을 거기에 잔뜩 숨길 수 있었고, 요술쟁이 책상마냥 서립 속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더랬다. 물건이

많아서 정리가 힘들었었다. 과감하게 버리고 정리하면 되는데, 그게 또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

그런 상큼한 추억도 있는데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

 

 

이전에 비하면 지금은 쉽게 물건을 정리하고 처분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지금조차도 망설여지는 때가 가끔 있다.

이걸 버리고 후회하지 않을 것일까. 물론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물건을 버리거나 처분해서 후회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개로 미련이나 집착같은 건 약한 편인지, 일단 버리고나면 후련해지는 감정이 

훨씬 강하다. 이런 부분에 의지해서 덮어놓고 일단 버리고보는 습관을 들이기도 했는데, 그런 지금조차 버리는 게

망설여지는 물건이 아직까지 있고, 그 영역에 들어가면 한없이 일을 미루고만 있다. 그런 경험을 말끔하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여기서 좀 더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다. 나 혼자서는 생각나지 않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 그걸 적극 도입해서 더 정돈되고 말끔한 일상을 추구하고 싶다.

 

 

이 책도 다른 미니멀리즘 책과 커다른 괘는 함께하고 있다. 일단 버릴 거, 잘 사용하는 있는 것, 버리고 싶지 않는 것을 나눠

일단 버릴 것을 없애는 것. 그것만으로 책상에는 상당한 공간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남아있는 물건은 편리함을 극대화하는

배치로 정렬해두는거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사진자료를 통해 세밀하게 설명해두고 있다.

 

 

번거롭게 손이 가고 품이 드는 일을 미리 해둬서 미래의 나의 짐을 가볍게 하라더라. 보통은 미래의 나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발상도 가능하다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다음주 나, 다음달의 나, 내년의 나를 위해 오늘

결정할 일을 미루지 말고, 해야 할 일도 게으름 부리지 말고.

... 사야 할 물건도 미루지 말아야 겠다? ㅎㅎㅎ 역시 미니멀리즘 최고

 

 

 

이번 책에서 배운 것은 모든 것의 디지털화. 이걸 나도 하고있는 중이어서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캘린더를

공유하는 방법이 있더라고. 회사 동료나 배우자 등 가족구성원들 사이에 활용하면 편리할 것 같았다.  

종이수첩이나 종이 문서로 출력하는 것을 지양하고있고, 작년부터는 다이어리도 사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 그와 관련

해서 여러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구글 캘린더를 비롯해서 몇 가지 어플도 받아두기도 했고.  

종이 메모가 익숙해져서 요즘도 아무 생각없이 종이에 끄적여두곤하는데, 이걸 스마트폰 메모로 이사하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고. 올해는 종이가 없는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싶다.

그런 목표에 다가가는데 할 수 있다고,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라고 용기는 주는 책이었다.

 

 

 

일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여러 사람의 사례가 실려있는데 대다수가

일과 가사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하루 일과가 촘촘하게 세밀하게 짜여

져있고, 그 루틴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은 이들이 시간을 절약하고 자신의 수고를 최대한 아끼는 방법을 이 책에서

공유해주고 있다.

일단 전자제품을 잘 활용해야하더라.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건조기는 일단 사용해야만 하는거다. 이것만으로 부족

하다면 도움을 받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루지 않는 것!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도, 지금 해도 될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인생마저 미뤄질 게 분명한데, 어째서 위기감을 가지 않는거냐. 나는? 

 

 

이 책에서도 나와있는데 잠을 잘 자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컨디션과 기분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수면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한달에 한번은 고열에 시달려서 고생했었는데 수면시간을 정해서 제대로 지킨 다음에는 괜찮다고.

시간을 철저하게 아끼며 살고있다면 더더욱 주의해야 할 부분이었다.

 

 

간단하게 식사준비하는 방법도 배웠으니 활용해볼까나. 미리 채소 등등 재료를 썰어서 얼려두면 요리도 쉽게 해치울

수 있다고 하니까. 물론 굶으면 설거지거리도 나오지 않지만. 그런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순식간에 그럴 듯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궁리해 볼 참이다. 그런 게 5가지 정도만 있어도 배고픔이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다. 외식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 앞으로는 왠만하면 직접 만들어 먹을 예정이라. 레토르트와 반조리

식품을 활용하면 못 할 것도 없고, 채소도 좀 신경써서 먹고 싶으니까. 여러가지 요리 꼼수들을 모아봐야 겠다.

 

 

시간을 그동안 너무 낭비하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더라.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시간들

모두 내 인생이었는데. 앞으로는 이 순간순간이 내 인생이라 생각하며 귀하게 귀하게 보내야겠다.  

 

 

 

 

 

 

독서기록을 쓰고 있으니까, 이왕이면 좀 잘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된 문장과 단어로 바꿀 수 없는

답답함에 팔짝 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갑갑해하고 있는 중이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냥 쓰라고 한다. 쭉 쓰고 많이 고치라고. 고치고 또 고치라고. 쓰고 또 쓰라고. 그게 이 책이 알려준 방법이었다.

그렇다. 가장 쉬운 길은 정도다. 정도를 가야한다. 하지만 나는 무빙워크 좋아하니까, 무빙워크를 이 책에서 찾고

싶었나 보다. 여기에서는 발견하진 못했지만 반드시 찾아내고 말리라. 무빙워크를.

마지막 페이지에 더 읽을거리라면서 책들이 소개되어 있던데,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못한 책도 있는데 전부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읽었다해도 이미 다 잊어버렸을 게 뻔하다. 그리고 무빙워크를 찾아내야 하니까 다시 읽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다.

저 목록에 있는 걸 탈탈 털어서 읽고나서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일단 정도를 걸으며 무빙워크를 찾아야 겠다.

무빙워크에 대한 내 집념은 그렇게 호락호락 약하지 않으니까.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

 

 

 

국어사전을 가까이하고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 단어를 모으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한다고 하는데, 알고 있기는 한데

습관이 전혀 들지 않아서 금새 잊고만다. 그러다보니 매번 쓰던 단어와 표현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 나태의 연쇄고리를 끊고 과연 어휘력을 늘릴 수 있을까. 나에게 심리적 부담이 없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양한 어휘를 찾아내는 재미를 깨치는 날이 얼른 와야할텐데 말이다.

어쩜 그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지금 그나마 가지고 있던 단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일단 열심히 써야겠다. 쓰다보면, 매일 쓰다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지 않으려나. 그럼 그때그때 뚱땅뚱당 고쳐서

다시 계속 나아가면 되지 않으려나. 내가 지금 필요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발견못한 척 모른 척 하지말고

해결책을 찾아서 책도 읽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봐야겠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 말을 전달할 적당한 단어와

표현이 부족해서 내가 답답하다. 일단 단어와 표현을 모으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   

 

 

 

 

학대가정에서 자라서 비뚤어진 인간으로 자랐다고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데, 과하게 넘치도록 인내와 절제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출산이라는 사건으로 갑자기 엄마가 되었지만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며 아이를 돌본다. 하지만

불안요소가 많았다. 개인이 혼자서 짊어질 수 없는 규모의 일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떠맡겨놓고, 과로와 심신피로에

지쳐가는 엄마가 더 힘내라고만 하는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작가는 엄청 힘낸다. 저만큼 할 수 있을까 정도로.

 

 

 

출산이란 아이에게도 큰 사건이지만, 엄마로서의 입지를 갖게되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대전환점. 신체적으로 정신적 감정적으로 이전과는 달라지는데, 그걸 본인이 되돌아보고 잠깐동안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왜냐하면 육아를 해야하니까. 엄마나 모성애라는 이유로 독박육아는 매우 쉽게 일어난다. 대체로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니까. 전업주부라도, 일을 하고 있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다. 육아의 전담은 어쩐지 오로지

엄마한테 몰빵된다. 대체로 주위에서 그렇게 하더라. 그리고 이 책에서조차. 아이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울기

시작하는데 남편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작가가 살아있나 궁금해하며 티슈를 코에 대더라고. 쿨쿨 자는거였다.

이런 장면이 이 책에서만 해도 많이 나온다. 잠깐 데리고 놀다가 울기 시작하면 엄마인 작가한테 떠넘긴다던지,

아이목욕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던지, 작가가 엄청난 노력의 결과 터득한 아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역시

엄마니까'라는 말로 평가절하한다던지. 그러면서 사람 좋은 척은 혼자 다 하는 캐릭터라 작가는 죄책감마저 가지게

된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반성하더라고. 어째서냐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러더라. 자신이 모두 해버릇

해서 아빠와 아들간의 정서적 교류나 관계형성까지 고민하더라고. 그건 아빠가 고민할 문제인데, 아빠가 책임져야

할 문제인데 그것마저 자기문제인양 끌어안고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은 전혀

없었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는 이중고 속에 과로할 수 밖에 없는데, 그 힘든 시기에 자신의 부모처럼 아이를

때릴까봐 걱정도 해야한다. 작가는 과하게 힘들거나 지치지 않으면 누군가 때릴 사람이 아닌 듯 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마감이 있는 일을 하고 있었고, 아이는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울었고, 자신이 아파서 드러누워도 도와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아이 아빠는 존재 자체가 이 책에 나와있지 않는다. 예전에 이혼으로 인해 아이를 혼자 기르는

만화가가 그린 육아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딱 거기에서 나왔던 아빠 비중이랑 이 책에서 나온 아빠 비중이 비슷해서

충격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저 상황에서 지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물론 힘들다고 아이를 학대해서는 안 되지만. 난 절대

학대하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하는데 작가를 보고있노라면 자기 학대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아이는 학대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나서, 게다가 일순간 후련해진 자신의 모습에 기겁을 하게 되니까.

그래서 그 이후에 더더욱 노력한다.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를 학대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부모와 같은 학대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것들이 모두 엄마이기도 하지만 자신이기도 한 나를 너무나도 몰아붙인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더 더 무리의 강도를 높여갈 뿐이었다.

그게 너무 아슬아슬했다. 저러다 위험한 상황이 오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저 정도까지 갔으면 정신과

상담이나 기타 도움을 받을만도한데 그런 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주위 사람

들과 잠깐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건 없었다. 그리고 오로지 혼자서 견디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혼자서 견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낮시간에 잠깐 봐주는 보육원에 맞기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되찾게된다. 말이 느리던 아이는 이제

말을 제법 잘하게 되고, 아이엄마친구도 사귀며 함께 공원에서 엉엉 울기도 한다. 또래 아이의 엄마와 교류하는데

거부감과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엄청난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아이를 어떻게 지키면

좋을지 나름의 답을 내리며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느꼈다. 육아는 결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람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자신을 궁지로 몰아서도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절대 스스로를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도움을 청하고, 자신의 부담을 나눠지고나서야 작가는 비로소 답을 찾았으니까. 그 이전에는 생각해 볼 시간 자체가

없었다.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그야 당연하다. 작가는 아빠가 방치해 몫까지 해내느라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자신을 학대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나와서 책을 읽는게 조금 힘들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코믹에세이답게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있어서 애잔하기도 했고. 그도 그럴게 웃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으니까.       

오사 게렌발은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그리는 작가다. 그리고 그것을 그려내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이

과거로 되돌아갔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상처는 봉인하고 없는 척 하는 것, 어리석지만 쉬운 방법이다.

물론 미봉책이라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알 수 없다. 작은 시한폭탄을 가지고 두근거리며 살아가게 된다. 운이

좋으면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높은 확률로 터진다. 그리고 그건 대체로 상황이 나쁠 때이다.

상황이 좋게 좋게만 흘러간다면 괜찮겠지만, 인생사가 그렇게 개인에게 유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힘들어

죽고 싶을 때 더 힘들라고 그 작은 시한폭탄은 빵하고 터져준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했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도록 싸웠다. 물론 매번

피만 많이 잃고 패했다. 그가 갈구하던 것은 쉽게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이 없어보이는 싸움에서

결코 좌절하거나 단념하지 않는다. 매번 다치고 상처입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반작용이 엄청났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 깨달은 것들을 작품을 통해 그림과 언어로 풀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책이 되었고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은 그의 경험과 성찰을 공유할 수 있다. 그의 경험을 발판으로 우리는 그가 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그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인터뷰를 보며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것처럼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선택한 방법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게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먼저 경험한 이들의 기록을 발판으로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7층'의 경우는 데이트 폭력을 다룬 책이다. 그가 만났던 남자친구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를 고립시키고

학대상황에서 옴짝달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어째서 그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는지,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상황에서 자포자기하게 되었는지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자동차 운전 중에 남자친구가 운전을 하는 그의 손가락을 뼈가 보일 때까지 물어뜯고 그 살점을 삼켰을 때,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된다. 그리고 구조를 요청한다. 아버지와 교수님에게 연락을 하고, 학교를 통해 도움도 받는다.

그의 작품으로 추론해본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로 짐작해보건데 이런 상황이 되면 무정한 아버지라도 적극적으로

딸을 돕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교에 소속되어있다면 교수님을 비롯하여 학교 시스템으로 최소한의 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지금보다는 좀 더 후졌었다. 피해자를

다그치는 게 쉽사리 일어나고 있었고, 가해자는 스리슬쩍 피해나갔었다. 가해자인데도. 그리고 그렇게 방치된 채로

시간이 흘러 여전히 사회기사면에서 여자친구나 배우자를 살해한 쓰레기들의 기사를 보곤한다. 얼마 전에서 봤었고.

사회 시스템에서 방치된 범죄는 세를 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방치가 일어난다면

다음번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살인이나 강력범죄에 대한 약한 처벌이나 처분을 볼 때면

그 과정에서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법과 도덕에 대한 인식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한다. 저 정도는 해도 괜찮다고,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이 직접 겪을 일이 아니면 상관없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카락을 쭈뼛해진다. 이 사람들은 이 사회에 더더욱 큰

해악을 불러들일 게 분명해보이니까. 그들에게도 언젠가 그 시스템의 부메랑이 돌아가리라 생각한다. 다만 순번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뿐.

 

 

이 책에서도 그런 가해와 학대의 주체였던 남자친구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작가가 분개하고 허탈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집행유예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인종이나 짐승처럼 손가락 살점을 뜯어먹었는데 인류의 법이

말랑말랑하게 적용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에 풀어놓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살점을 뜯어먹는 위험인을

풀어줄 수 있는걸까 여전히 의아하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작가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학대에 대한 경험을 들려준다. 스웨덴의 경우

79년에 이미 육친에 의한 신체체벌이 법률로서 극복되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부모님에게 신체적 학대를 경험한

적이 없다. 뺨 한대를 엄마한테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때리고나서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 다음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법률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률이 규율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그 틈을 타서 학대는

존재하더라고. 작가도 시간이 많이 지난 이후에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알게된다. 자신이 경험했던 것이 정서적 학대

라는 것을. 이름이 붙으면 참 좋아진다. 거기에 대한 해결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하고 문제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작가는 이름이 붙기 이전 시절을 살아야했다. 작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있었던 부모의 애정을 

받지 못했다. 비극은 어린 아이는 부모의 애정을 갈구할 수 밖에 없다는거다. 그 역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끌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그의 부모는 강적이었다. 꿈쩍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작가는 자기혐오라는 

짐도 져야 했었다. 끝없는 부모의 후려치기 속에서 작가는 시들어간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에서 20년

이상 방치되면 망가진다. 그리고 어딘가 고장이 난 채로 그 이후의 삶을 살아야한다.

작가도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늘상 그런

이야기는 듣는다고한다.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님과 잘 지내야지. 스웨덴이나 여기나 사람 사는데는 다 비슷한가보다.

자신의 경험치가 보통이고 기준이라, 거기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은 2차 가해에 나선다. 3차 가해도 하고. 도덕적이고 바른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정서적

학대로부터 무지한 이들이었다. 잘 모르면 가만있으면 되지 자신의 기준에 합당할 정도를 지키지 않으면 자신의

세계가 깨져버릴 듯이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 저쪽에도 존재하나보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런 상황에

대한 가정을 전혀하지 못하고 입으로 이런저런 충고라는 이름의 주절거림을 당사자 면전에 내뱉는 건 지능문제같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효문화가 중시되고 있으니까. 정말 중시하고 있는지 의문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것보다 훨씬 큰 비난과 법적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것도 그만큼 나쁘지 않나. 힘없고 약하고 어리고 물리적으로도 작은 생명체를

공격하는 피붙이 혈육이라니 패륜자식만큼 비난받아 마땅한 것 같은데 어쩐지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약약강의 사회라서 그런 것일까. 약한 것들은 보호받지도 못하고, 범죄의 대상이 되어도 그 정도 처벌로 충분하다는

것일까. 작은 아이를 때려서 죽인 사건을 바로 며칠 전에 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물리적 폭행에서도 아동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곳에서 살고있어서 참담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서적 방임과 학대까지 보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그리고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끔찍한 시간들을 우리 사회는 방임하고 있다.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가정사나 개인사라는 이유로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는 폭력의 폐해, 그것이 이 작가가

다루는 주 내용이었다. 인생은 힘들다. 하지만 저런 폭력에 노출된 인생은 더더욱 꼬인다.

'시간의 지키다'는 폭력을 각성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 이후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게 되는지를 아주

약간만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살아간다. 배우자를 만났다. 소울메이트는 아니지만 서로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 아이도 둘을 낳아서 기르고 있다.

 

 

그런데 십년동안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단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설명할거냐고. 잘살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글을 쓸거냐고. 정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 싶지만 작가가 있다지 않는가. 무슨 상관이지 싶지만.

언제까지 이런 글을 쓸거냐고 물을 정도라면 그 작가한테 관심을 끄면 그만이고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 그것만으로 설명은

충분할 거 같은데. 독서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작가가 엄마이니까 평범에서 넘치는 독자 서비스를 받을수 있을지는 모르

겠지만, 의무는 아니다. 작가가 알아서 하겠지. 남의 자식일까지 간섭질하는 오지라퍼들이 북유럽에 많은가보다. 인생이

심심한가보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거고, 작가가 본인의 인생을 정리해서 책을 냈다고해서 저런 간섭이

섞인 질문을 받을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스타일의 글을 쓸 거 같은데, 언제까지 이런 글을

쓸거냐고 물어보는 건 은퇴를 종용하거나 대대적인 작품생활의 대변혁을 촉구하는 것인데. 게다가 이런 글을 아이들이

읽으면 어떻겠냐니. 타인에게 보여서 문제가 될 글을 출판할리가 없지 않은가. 아이가 읽어서 큰일 날 내용이었나 괜히

작가의 다른 책을 떠올려보게 된다. 아이가 읽는 게 뭐가 문제라는건지 도통 모르겠다. 진짜 뭐가 문제라는거지?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이후로 부모님과의 관계 회복은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맞다. 아이가 생겼으니까. 자신은 실패했지만 아이를 계기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보려했던 듯 하다.

자상한 할아버지와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들이 안정되고 충만한 관계를 갖기를 바랐던 것 같다. 자신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런 평범함을 아이들에게는 이어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다시 한번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조정해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그런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사람은 안 변한다. 매정했던 아버지가 다정한 할아버지가 될 리가

없지 않는가. 결국은 같은 사람인데. 작가의 아버지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면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상처는

갱신된다. 2011년 마지막 크리스마스라는 부제가 있는 파트에서 작가는 이제 영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단념한 거 같았다.

처음부터 전혀 없었던 것을 잃었다는 마지막 문장이 몹시 쓸쓸했다. 하지만 자유로워졌다고.

지금은 2019년. 8년이 지나는 동안 작가가 또 다른 시도를 그 사이에 하지 않았을까. 내가 읽어본 그의 책은 고작 4권 정도

뿐이니 알 수 없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도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갈구했었고, 그리고 그것을 서른이 넘어서도, 아이가 생겨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것은 본능이고, 사람은 쉽게 모든 것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편한

방향으로 기억을 재편집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마무리를 보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면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에서 부모와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지키다'에서 정말 열심히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구축하려고 애쓰고 있더라고. 다음 책에서 작가가 또 다시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놀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예술을 만나서 구원받았다고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에서 살아갈 동력을 얻고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애 최초의 인간관계가 엉멍이었고, 그 뒤로 만난 남자들은 형편없는 인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인간불신에 빠지지

않고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도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니 작가는 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강한 사람이 어떤 메세지를 주려고 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로 연결이 된다.

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아수라장을 피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무슨 책을 읽게되든 결국은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에 머무르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은 여기에 도달

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다음 단계로. 이 단계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으니까.

 

 

 

오사 게렌발 책은 모두 추천한다. '가족의 초상'은 조금 애매하다. 제일 좋았던 책은 역시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였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자주 본다. 내다버리고 싶은 가족 이야기. 특히나 철없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 좋은 부모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다. 하지만 그걸 모든 사람이 갖는 건 아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고, 그 중에는 형편없는

부모들도 있다. 오사 게렌발 작가의 경우처럼. 그건 부모의 문제이지, 자식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에게 너무나도 부족한 애정을

받아서 갈증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보기도 했고. 하지만 그들은 쉽게 부모의 손을 놓지 못하

더라. 이 책의 작가와 비슷한 과정을 끝없이 지속하고 있었다. 엘프리데 옐리네크도 그랬다고 하지 않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도 그랬다.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잘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생애 최초로 만난 타인인 부모를 잘못 만난 대가는 비싸다. 미성년자라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고, 그 사이에 어마무시한 영향을

받으니까. 그리고 그 경험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데도 영향을 준다. 그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비용을 치르는 건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적당한 시점에서 자유로워져도 좋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부모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화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면 된다.

 

 

 

 

 

 

 

 

  

켈리델리의 창업자인 켈리 최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담은 책이다. 켈리델리는 스시 도시락을 마트 체인 한 코너에서

판매하는 사업으로 7년만에 연매출 5천억원을 달성했고, 10여개국의 나라에 체인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기가 왔을 때의 대응능력이 비범했다. 이를테면 작가는 고등학교 진학시에 첫번째 시련을 맞이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고등학교에는 보내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하지만 거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등록금이 면제된 학교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등록금은 어떻게 되더라도 식비와 통학비도 마련해줄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는 또다시 들었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와이셔츠 만드는 공장으로 올라가 야간에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가난에 뒷덜미를 결코 잡히지 않았다는데서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할 정도의 집안형편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냈고, 그 방법이 좌절되었을 때 또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이미지라.

일본으로 유학을 단행했고, 또다시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결코 수정하지도 않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살아보게 만들었다. 살아가다보면 있을 수 밖에 없다. 싫은 일, 힘든 일, 안 풀리는 일.

가끔 망할 수도 있다. 좀 심하게 망할 수도 있고. 연이어 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작가도 망했었고. 10억 빚을 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물론 홀랑 망한 상황에서 칠전팔기 정신을 불태우며 

순간적으로 회복하는 건 불가능의 영역이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 실패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툭툭 털고 스스로를 돌봐주고 그 실패를 과거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나에게는 부족했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되었다. 실패할 수도 있는거다. 앞으로도 할거고.

안 될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의외로 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나한테는 나밖에 없는데. 까짓 실패 한번 했을뿐인데 나를 방임한채 순간순간만을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신의없고 의리없는 짓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시도를 해볼 것인지.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더니 나는 내가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할까봐 아무것도 못하는것보다는 실패를 선택하는 게 차라리 다이나믹하고 재미있지 않겠는가 싶기도하고.   

 

 

나도 책을 열심히 읽은 편이었는데 내가 느끼던 점이 이 책에 나와있어서 반가웠다. 책을 그대로 적용하면 안된다는 것.

책을 읽다보면 직접 해보고 싶고 시도해보고 싶은 게 발견되는데 절대 그대로 하면 안 된다. 경험으로 배웠다. 자신에게

맞게, 상황에 맞게 잘 살펴서 시도해봐야 한다. 그 부분이 나와있어서 공감하며 읽었다.

시대에 안 맞는 것도 있으니까 시간도 잘 계산해서 넣어야한다. 2D폰 쓰던 시대의 룰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한다. 내가 그랬었다. 그리고 안 통하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이 책을 읽고나서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인터뷰가 있어서 그것도 보았더랬다. 거기에서 이상형의 남편을 만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있던데. 철저한 기획만이 인생을 좀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남편도 그냥 만난 게 아니었다. 30가지 정도의 이상형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자기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아서 직접

만났을 때 이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본 적이 없어서.

배우자감을 고르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고르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살고 싶은 집을

찾을 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물론 유효할테고.

그리고 리스트를 작성할 때 구체적으로 적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대충 대략적으로 적은 소원은 이루어지더라도 스스로가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실현되서 난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세세하고 치밀하게 구상해야

겠다. 앞으로는 그리 살아야겠다.

...이거 이제까지의 내 인생을 전면부정하는 소리같은데. 뭐 부정해도 된다. 뭐 어때, 내 인생인데. 그동안 너무 허공에 솜사탕

구름같은 태도로 인생을 살지 않았나 반성한다. 반성은 어찌되어서 끝이 없는 것일까. 나는 반성을 참 잘도 하는 것 치고는

발전이 없다. 아마도 행동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파악하고 있다. 작년에 애써서 끌어올린 게 이 정도인데, 올해는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고, 움직이며 열심히 생각해야 겠다. 그리고 치밀하게 치밀하게!! 리스트도 30개 정도는 적어주고.

 

 

 

당신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이 책에서 봤는데 적잖이 위로가 된다.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고보니 내가 나한테도 잘 안 해줬던 거 같다. 많이 해줘야지. 무엇이든, 원하는 걸 하라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고.

하고 싶은 걸 하고, 가고 싶은 델 가고 안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다. 내가 뒤에서 바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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