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는 주체는 당연히 작가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정말이지 괜찮지 않은 것들 투성인 것으로 가득하니까.

그런데 그게 '전부 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대충 뭉뚱그려 지나가고 있다.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있다.

그러다보니 나까지, 나마저 지켜야 할 것을 망각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때 이 말을 해야한다. 안 괜찮다고.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작가 본인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말이라고 믿으며 책을 전부 읽었는데 마지막 즈음에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자신이 했던 꼰대짓에 대한 고백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했던 스무살의 신문배달동료가 연대와 협력을 청했을 때 꾸짖었다고 한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그런 걸 요구하면 되냐고. 어쩌면 평범한 일이다. 이런 일이 어디 여기에서만 있으랴.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 청년은 떠났다고 한다. 사과는 물론 하지 못했다고.

사회학을 공부했던 박사과정의 형을 믿고 자신의 계획을 의논했던 그 청년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그 사건이 그 청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릴 때 그런 사건을 만난 적 다들 한번 있지 않나.

인간불신으로 이어지는 나쁜 경험들. 음...나이가 들면 '뭐야?'하고 그냥 지나쳐가는 일이라도 그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사람을 더 믿게되고 그만큼 상처받게 된다. 그 청년의 상처가 크지 않아서, 그 이후 경찰공무원이 되서 가끔 작가를

텔레비전에서 보거나 신간이 나올 때면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 잠깐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정도이기를.

그때 나한테는 그랬는데, 십년만에 완전히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며 웃으며 말할 수 있을만큼 그 청년의 인생에서  

그 사건이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책 말미에 커피를 마시면서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카페를 하는 친구가 작가의

책을 몇 권인가 가져다두었더니 손님들이 불편해한다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편안히 읽기 어렵다고.

도대체 커피를 마시면서 편안히 읽기 어려운 책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작가의 전작을 찾아볼까 잠깐이지만 호기심이 들었다.

물론 나는 그 책을 읽더라도 커피를 사발로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책이라도 커피를 마시지 못할 정도의 책은

내 인생에서 아직까지 없었다. 나는 좀비믈을 보면서도 푸딩을 먹을 수 있고,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곧잘 팝콘을 먹는다. 

놀라서 팝콘을 쏟은 적도 없다. 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불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줌의 희망을

보여주는 부류의 책이나 영화들도 읽었지만 커피를 마시기 불편했던 적은 없다. 그리고 카페에서 비치해둔 서적에 대해서

가타부타 참견하는 손님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하다. 안 맞으면 안 읽으면 그만이지. 되게 오지랖이 넓구나 생각할 뿐.

그저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이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고나리질하는 손님으로 인해 이 책이 나왔다고

생각하니 그건 좀 재미있다. 이래서 고나리질이 명백을 유지하며 활성화되는 것일까?

 

이 책은 하나도 괜찮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면 그냥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내가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안 그러고 싶은데 어릴 적부터의 학습으로 나도 모르게 그랬다면

한동안은 찝찝함에 괴로워진다. 비난의 대상은 나, 이미 일어난 일이라 무룰 수도 없다. 그때 사과를 해야한다고 이 책에서

말하더라.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기에서 나오는거라고.

나는 내가 잘못을 하거나 나쁜 짓을 했을 때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으면 한다. 가끔 나쁘거나 잘못을 하더라도 그럼에도

자신은 선량하다고 포장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자신 외의 어떤 것을 탓하는 경우를 아주 자주 많이 보고있다.

그럴때면 나는 적어도 내가 저지르는 잘못을 정확히 알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꼰대짓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꼰대짓에

동서고금, 인격자고 뭐고 없다. 국경도 없고. 나는 내가 한 꼰대짓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당시에 모르고 있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스스로의 꼰대짓을 알아차릴만큼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사회학 책을 가끔씩 읽고 있다.

내가 한 꼰대짓을 가늠해보고 알아차리려고. 

 

이 책 읽어보면 재미있다. 내가 그동안 불편했던 것들이 문장으로 또렷하게 드러나있는 걸 확인하는 것은 역시 속이 시원해

진다. 내가 잘못했던 게 있으면 그게 잘못이라고 꼰대짓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계속 꼰대짓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백화점을 다니면서 백화점에 거울을 인식한

적이 없었다. 이 책을 보며 새삼스럽게 거울이 있었나?! 했더니 있었다. 내가 거울대용품으로 사용하곤 했었다. 눈에 들어간

손눈썹 떼어낼때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백화점의 직원을 보며 작가는 불편하다고 했었는데, 나도 그랬다. 다만 이유는 다르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백화점 직원이 언제나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언제가도 같은 연령대의 비슷하게 준수한 외모들의

사람이 있다. 그럼 그 이전에 있었던 그 직원은 어디로 간 것인지, 이 직원은 몇 년 뒤에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 점에서 의아해

진다. 내가 나이가 들면 직원도 비슷하게 나이가 드는 게 맞는데. 언제나 그들은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있다.

그래도 되는건가? 몇몇 직업군들에서 그런 점이 발견되서 나는 불편하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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