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냉장고에서 독립을 갈망하던 작가는 42프로젝트를 덜컥 시작한다.

작은 공간을 얻고, 그곳에서 셀프 인테리어를 한다. 진짜 셀프 인테리어.

곰팡이와 싸우고, 가벽을 설치하고, 이케아에서 싱크대도 사온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사소하지만 넘어갈 수 없는 일이 고개를 들이민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작가는 아지트를 손에 넣는다!

 

이 책을 전부 읽은 후 왜인지 내가 인테리어를 한 것마냥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는 이케아의 가구조립까지일지도 모른다는 걸 내심 받아들였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나 자신의 한계를 알게 해줬다는 점에서

보람있는 독서였다. 게으름쟁이에, 시련이 오면 헤실헤실 웃으며 금새 포기해버리고

싶어지는 나로서는 자잘한 파도가 연이어 들이치는 셀프 인테리어의 세계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듯 하다.

나라면 페인트 빈깡통을 걷어차고 바닥에 드러누워 울었을지도...

라는 순간이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

 

 

작업실 셀프 인테리어를 계획하고 있다면 참고삼아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돈을 써야 할 때는 언제인가, 돈을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인지,

(가격은 중요하다. 무용한 비용을 줄여서 멋진 것에 돈을 쓰자는 의미에서)

돌발변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하서 미리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 책에는 그런 셀프 인테리어의 전과정들이 세세하고 섬세하게 옮겨져 있다.

세부적인 금액까지 알려주고 있으니까 예산책정에도 도움이 될 거 같다.

물론 예산은 개개인의 타협 지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내 망상 속의 셀프 인테리어는 깔끔한 벽에 원하는 색으로 페인트칠 정도에만

머물러있어서인지(이건 분명 미드와 미국영화의 영향일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본격 인테리어 간접체험이 몹시 강렬했다.

 

이런 시도는 멋지다.

이 책의 원제가 조금 더 좋다. 연수입 90만엔으로 도쿄 해피 라이프.

한국어판으로 나온 제목도 예쁘지만 원래 제목이 작가의 생활 모습 딱 그대로라서.

헨리 작가와 일한다라는 동사는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해피 라이프라는 단어는 찰떡같다.

헨리씨는 해피 라이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하고있다. 책에는 일에 대한 부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애정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단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타입은 아닌거다. 누구나 그렇듯이 해야하니까 하는거다.

이틀간을 묵묵히, 더 중요한 5일간의 뒹굴뒹굴 유유자적한 자신의 삶을 위하여.

 

 

제목 그대로 헨리씨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한다. 연수입은 100만 미만. 세금도 연금도 내지 않는다. 안 내도 된다고 한다.

미래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의 나로 살아간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행복을 소중하게 지키며 삶을 꾸려나간다.

고군분투도 아니다. 걱정도 없다. 불안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저 살아간다. 여유만만, 유유자적,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직장에 취직했던 적도 없고(정규직 말이다. 알바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하고 있다. 현재도 주 2회 일을 하고 있으며 번역 기타등등을 하며 연수입 100만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고교시절 알바처의 매니저에게 받은 사회화 훈련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일하기를 신성시하지 않지만 일해서 얻는 소득으로 꾸리는 소소한 일상 소중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대학도 가지 않았고, 집도 차도 없고, 그걸 소유할 생각도 전혀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는 잠깐 나갔다올게라는 느낌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돈을 모은다거나 계획도 세우는 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무작정 상경하기도 하고.

그리고 현재 월세 28천엔의 역에서 걸어서 20분인 집에서 만족스럽고 즐겁게 칩거 중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착실하게 해내는 일들은 어렵고 간신히 해냈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만하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일들을 마구마구 해낸다.

그는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그 소망을 큰 고민없이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최소화 시켰다.

자신의 의사를 잘 파악해서 제대로 들어주다니! 본인에게 가장 멋진 사람이 아닌가!

 

 

독특하다면 독특하달지도 모르겠지만, 보통이고 평온하게 다가온다.

그는 그 자신의 룰에 따라 상식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꾸리며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과거의 상처에 휘둘리지도 않고, 미래의 나에게 현재를 담보잡히지도 않는다. 그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수제 사과쨈을 바른 스콘에 곁들어진 밀크티가 있는 방풍경이 이 책을 읽고나서 어쩐지 그려지고 있다.

그가 만들어낸 오전의 티타임은 멋졌다. 여유롭고 반짝였다.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과 같은 삶의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그 말 그대로의 어투로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온화하지만 단단하게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틀을 일하고 5일을 빈둥빈둥이라고 하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꾸려가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에 오로지 집중하고, 그것을 위해 필요없다고 판단한 것을 최대한 줄이고 자신의 욕구도 정돈하고 있었다.

일을 적게하기 때문에 소득은 적을 수 밖에 없고 그 소득에 맞춰 생활을 꾸려야하기 때문에 채식과 채집생활을 하는데

그로 인해서 폭력성과 성욕도 줄고 평온하고 안정된 품성을 얻었다고 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또다시 손에 들어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는 그것을 잘 인지하고 있고, 대부분의 것에서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지를 골라내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방식은 나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꽤나 있었다. 그와 같은 삶을 살 필요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일단 나와 맞지도 않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오로지 그에게 특화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의 생활철학과 삶의 방식에게 조금 영감을 받았고

나는 내 삶의 방식에 조금 더 자유로움를 추구해도 괜찮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는 많이 달랐지만 공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 문구에서. 운석이 지구로 떨어졌을 때의 대처법.

그는 이것에 있어서만큼은 나와 동일한 부류였다.

나는 운석이 아니라 좀비가 습격한 세상을 가정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랄까.

 

 

 

그는 무겁지 않은 어조로 죽음이라던가 노후를 이야기한다. 자신의 과거에서 아팠던 부분에 대해서 말한다.

한순간에 내린 가벼운 결론은 아니었을 거다. 많이 생각하고 생각한 다음, 지금 이 순간의 결론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라고 해도 여전히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서 말한다.

 

나 역시 가끔 조금 무거운 주제나 소재에 대해서 말할 때가 있다. 혼자서 많이 생각했지만

누군가와 생각을 교류하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테니까 그 소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말을 꺼내면 대체로 공기가 달라진다. 가끔 이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리스머스 종이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까지가 괜찮을까 조금 무겁고 어두운 대화를 시도해보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는 걸 포기하고 있었다.

관련 도서를 탐독하며 일방적 의사전달자인 작가의 생각과 글을 읽으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변화를 도모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방식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말해보는 방법 말이다.

그러면 좀 더 많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내가 놓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줘볼까 생각 중이다. 그동안 과도하게 진지하지 않았나에 대한 반성을 하기도 했고.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고 자료도 좀 더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생각이 정리되면 할 말이 적당한 온도로 표현되지 않을까.

이것을 이제부터 시도하려고 한다.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는 사람이 아닐까? 앞으로의 헨리씨도 잘 살아가리라.

 

나도 대충 잘 살아봐야 겠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제일 즐겁고 기쁜 시간을 만들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