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동화를 많이 읽는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청소년문학상을 읽었더니
참 글자가 많다. 그리고 동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실적인 폭력이 등장한다는 점이랄까.
아몬드에서 일어났던 강력사건들 중에 어느 한가지만 만나도 삶은 이전과는 같은 형태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무차별 살인, 유괴인지 실종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아이의 사라짐, 교내에서의 집요한 따돌림, 그외에도 꽤 많은
인생에서 만나서는 안 되는 사건들이 아몬드 안에서는 산재해있다.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이라고 진단을 받은 아이가 있다. 평범과 보통이라는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목표를
전자렌지에 햇반돌려먹는 것마냥 손쉬운 일인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 사회에서 저
아이가 치뤄야할 건 가혹할 게 분명하다. 홈스쿨링이나 검정고시를 선택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하는 공간에 들이밀어진다면 더욱 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엄마와 할머니가 있다. 물론 보통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에게 주입식 감정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주입식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제일 귀여운 모양새긴 하지만.
하지만 교육이란 무엇이 되었던 비슷한 모양새다. 아이가 성장하고 질문이 많아지면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그게
우리가 매일 느끼는 감정이라도, 찬찬히 뜯어보면 겁내 복잡하고 말로 설명하기는 몹시 힘들다. 아이가 묻는 질문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엄마는 곤란해진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때그때 다른 용법에 난감해한다. 감정은 그토록 복잡
하다. 그래서 공감이 필요한 모양이다. 언어만으로 안 되니까.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는 그 감정을 최대한 언어로 표현하려는 아이였다. 감정이 없다기보다는 감정을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서 설명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아이. 그러면서 보다 본질에 다가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감정을 순환시키는 방식이 달랐다. 그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면 아이는 병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가게 된다. 아몬드 소년처럼.
예쁜 괴물이라고 부르는 할머니도 있었고, 아이에게 삼시세끼 아몬드를 먹이는 엄마도 있어서 그는 괜찮았다.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바람막이가 너무나도 훌륭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그 평온함 속에서 아이는 살아가고 있었다.
그대로라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든 그 아이는 잘 자랐을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보호막
속에서 더디지만 차근차근 성장했을테니까. 다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을 뿐.
하지만 시간은 아몬드 소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가족외식을 나갔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누구든지 웃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놈을 만나버렸으니까. 그리고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소년이 되는 동안 겪는 일들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아이가 범죄를 목격하고 슈퍼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
했을 때 아저씨는 방관했다. 아이가 자신이 끌어 쓸 수 있는 단어를 최대치를 사용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저씨는
태연했다. 그저 텔레비전을 들여다봤을 뿐이다. 아저씨가 몰랐던 건 거기에서 죽어가던 사람이 자신의 아이라는 것뿐.
실직을 하고 차린 치킨집이 2년만에 문을 닫고 히키코모리가 된 남자는 웃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려고 했다.
자신의 상황이 처참하고 암울하다면 타인 모두가 자신의 기준에 합당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흙탕에서 살아가고 있다. 몹시 괴롭지만 어쩌다 그 시간, 그 순간 거기에서 웃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는 왜
한 순간의 테스트를 실시한 걸까. 신이라도 되는냥.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이 다치고 쓰러지는 동안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긴 그러기 위해
경찰이 있고, 모두들 두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쪽수로 이길 수 있다. 한 명 정도는 다수가 힘을 합치면 제압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거리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를 떠올려본다면 누구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 순간은 슬프기까지 하다.
따돌림을 직접 실행하는 아이들은 지능이 부족할 뿐이다. 그리고 그 부족한 그대로 자라서 사회를 망칠 예비군이라고
생각한다. 후에 반성하면 다행이지만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도 않고 제대로 사과하기에는 자기애가 넘치지 않을까.
그들이 통렬한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제 값을 치르게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이 소설 속에서 또라이같은 것들을 대충 추린 게 저 정도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몬드 사회에서의 비난은 몽땅 아이
에게 쏠린다. 왜 더 긴박하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냐고. 왜 엄마와 할머니가 죽었는데 오열하지 않냐고. 왜 평범하게
학생 무리에 섞여들지 않냐고. 그저 전부 이상하고 미친 소리 같았다. 정말 비난이 향해야 하는 곳은 저 사람들이니까.
구조 요청에 대충이었던 슈퍼 아저씨, 무차별 살인 계획을 세운 악마, 집요하고 끈적한 집단 따돌림 종자들.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까 조용히 숨을 죽이며 방관했던 다수의 사람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 이들에게 그에 합당한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일까. 대신 소수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아몬드 소년에게 모든 비난을
제 몫을 뛰어넘은 책망을 뒤집어 씌우는 것일까. 아직 어린 소년일 뿐인데.
그 아몬드 소년이 또다른 상처입은 소년 곤과 도라를 만나면서 성장한다. 성장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을 치르긴 했지만.
아무리 소설이래도 너무 한다 싶을 정도니까. 여기에 나오는 비중있는 주/조연 캐릭터들은 왜이리 안타까운 애들뿐일까.
사건과 사고 속에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쉽게 어그러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들이 작가가 그 애들에게
부여한 삶이니까.
아몬드 소년의 주위에는 현실에서는 일단 내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종류의 사람들이 그나마 아몬드 세계가 끔찍한
공간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력한다.
2층에 왠 빵집이란 말인가. 1층을 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2층 빵집. 그런데 빵집 주인이 전직 의사다. 아몬드 엄마가
아몬드 소년을 부탁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잘 부탁한다고. 그걸 들어주는 실존인물이 있을까. 비슷한 실존인물은
본 적이 있는데 본인 가정이 망가졌었다. 아몬드 세계의 빵집주인이자 건물주는 가정도 없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저걸 들어줄 수 있었나보다. 아몬드 소년이 혼자가 되었을 때 그를 등 뒤에서 바쳐준다.
곤이 아빠는 말썽을 부리는 곤이를 2번 때린다. 그리고 통탄의 반성을 하고 다시 곤이 돌아왔을 때 휴직을 선택한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자신의 잘못을 제깍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보통은 사람은 변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마주할 때는 이미 생의 끝머리 즈음이 아니겠는가.
아몬드 엄마는 헌책방을 연다. 헌책방이라니 부양할 미성년 자녀가 없다면 그렇다치지만 이건 아니다. 할머니의 일을
물려받아 떡볶이 집을 차렸어야 했다. 요즘 떡볶이 비싼데, 헌책방보다 이쪽이 훨씬 전망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나갔다고하니 엄마는 요술쟁이인가. 엄마와 할머니가 지키지 않는 책방은 금새 내가 예상했던 루트로 망해간다.
사건 이후에 혼자서 책방을 지켰던 아몬드 소년도 장사가 되지 않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폐업을 결정하게 된다. 그 과정을
읽을 때 나 역시 알라딘 셀러 폐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신기했었다. 이런 우연이.
할머니가 젤 멋진듯 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아몬드 소년을 사랑해줬으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저런 사랑을 과연 할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이 책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인물들이 제법 많이 포진해 있어서
그 참담함을 희석시킨다. 아몬드를 읽기 전에는 대략적인 내용만 보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 활극이려나
예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끔찍한 사건들이 도사리는 가운데서도 제법 따사로웠고, 평온했다. 그건 모두 신비하고 강한
캐릭터들이 아몬드 세계에 포진해있어서이리라.
그러는 동시에 이런 인물들이 없이 이런 사건들을 직접 겪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본다. 나도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어쩐지 가해자에 공감하는 곳이니까. 분명히 가해자인데 안됐단다, 그들도 사정이 있다고 할 때마다 탐욕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피해자의 몫까지도 악착같이 차지하고 싶었나보다.
감정만 제대로 보통으로 처리하지 못할 뿐인 아몬드 소년이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였다.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
교내 따돌림의 당사자, 일방적인 폭력의 피해자, 마지막에는 이유없는 칼부림까지 겪는다. 나비날개 하나 뜯어버린 적 없고,
누군가에게 나쁜 소리를 한 적도 없는데 어쩐지 모두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함부로 대한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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