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곤 하는데 거기에서 기사를 발견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명쾌한 어조가

마음에 들어서 글쓴이를 찾아내서 더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이 책의 저자였다.

 

기사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 책은 어째서인지 고평가 된 자존감의 정체를 탈탈 털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자존감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 결과에 몸을 우겨넣으라는 미션을 사회 전반에서 몇 년 동안

강요당했다. 원인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사회에서 요구한다.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원인을 만들어달라!!!

 

1만 시간의 법칙과 자존감처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소비되어 개인을 고문하는 것들이 젤 싫다. '아웃라이어'에서

다룬 1만 시간의 법칙은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 한 가지 덧붙여지는 게 있다. 1만 시간이 투입

되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 시대, 그 환경이 아니었다면 1만 시간을 쏟아넣어도 폭발적인

성공의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아웃라이어에서 분명히 읽었는데 그 부분은 쏙 빼놓고 소비하더라고. 1만 시간을

투입해도 평범하게 망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보다 갑절이 무엇이냐, 100배는 많을 거 같은데.

그리고 최근 몇 년가 우리를 옥 죄어오는 또 하나의 코르셋. 자존감 나부랭이가 있다. '자존감이 뭔데, 먹는건가?'

라고 생각한 건 실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만큼 열풍이었고 나 역시 거기에 휩쓸려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친 흑역사가 있다. ㅠㅠ 미안, 과거의 나. 지금부터 안 그럴게.

 

사회의 2대 악한 강요로 개인적으로 규정한 것 중에 하나인 자존감에 대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자존감의 실체란 오즈의 마법사와 다름없었다. 자존감에 대해서 반발하고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추천한다. 그동안의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자존감, 그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멋진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거기다 한 가지 더 얻은 게 있다면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똑똑한 것이라고 이제부터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예정이다.

그 전에 연구결과를 제대로 정독해야 겠지만. 게으른 사람들이 더 똑똑할 가능성이 많다니! 그래서 그랬구나.

역시 나는 똑똑했었던거다!!! 내 게으름은 모두 지능문제였던거다. 단지 너무 똑똑했을 뿐.

 

이 책에는 과거의 내 모습이 박제 되어 있어 앨범을 뒤적여보는 기분이 되기도 했다. 물론 사진첩에서 빼서 버려야 할 것

투성인 사진으로 가득했지만, 그 역시 괜찮은 경험이었다. 예전에 내가 나한테 이만큼 모질게 굴었구나, 앞으로는 더더더

나한테 잘해줘야지, 너그럽게 대해야지,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여주고, 하고 싶지 않은 건 절대 하지 말아야지. 여러가지를

다짐하게 된다. 요즘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나에 대해서도  참

애썼구나, 우울한 가운데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굳건히 지키면서 지금의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서 과거의 나도 그때 그대로 모습으로 존중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그리고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내용이고.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좀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참고할만한 조언들도 있어서 두어번 읽어봤었다. 마지막에는

오렌지색 글씨만 쓱쓱 읽으며 복기하기도 했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12월도 이제 절반이 훌쩍 넘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도 시간을 내주는 게 어떨까? 그 시간을 갖는데 도움이 될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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