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분과는 취향이 너무나도 달라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게 되었다. 이토록 다른 사람이라니!!

 

우선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위해서 집을 구입했다는 점. 나는 물건을 포기했었다. 과감하게 몽땅몽땅 내버렸고

이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음흉하게 웃으며 버릴 것을 골라내고, 망설이다가도 휙하고 처분해버리면 개운해진다.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일드에서 여주인공이 버리가 변태라는 변명을 수여받고 히죽히죽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의 일이 아닌게 되어가고 있다. 어쨌든 이때부터 상당히 다르리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정도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커져갔다.

 

술취한 선배가 개똥밭을 구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개똥밭인 것을 모른채로 방치한 것이지만, 되게 흐믓하게

바라보더라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을 대굴대굴. 멋지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올 장면이다.

하지만 저 선배가 실존 인물이라면 나는 단박에 쯔쯔가무시병이 떠올리며 술주정뱅이 선배를 뒷덜미를 잡아채서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찬물을 멕여서 깨운 다음에 샤워를 시켰을테다. 물론 주정뱅이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건 상당히 힘들었을테고 분명 말도 들어먹지 않았을테니까 심하게 직언도 해가면서. 

그리고 다음날 해장국을 먹으면서 이제 술 마시지마라고 잔소리를 해대고, 개똥밭에 굴렀던 것을 한동안은 놀렸을

테다. 10년 정도?

 

이탈리아에 가서 맥주 한 병을 서비스를 받거나, 가격을 할인받아서 기뻐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라면 분명 세상에는

공짜 호의가 없다고 생각했을테고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쓴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은 대찬

구글링으로 이어졌을테다. 

 

록페스티발이 나오는 부분이 좀 그랬다. 버스를 잘못타서 엉뚱한 곳으로 가서 경찰차를 타고 첫공연 전에 무사히

당도했다는 게 나온다. 이건 취향이 문제가 아니라 좀 많이 의아했다. 심야에 위험한 시간에 미아가 된 것도

아니었고, 범죄의 피해자나 피의자가 된 경우도 아니었다. 다만 버스를 잘못타서 첫공연에 늦거나, 택시비가

조금 많이 나올 상황이었을 뿐이다. 수능날에 경찰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국민 공통으로 합의된 배려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작가분 이때 경찰차를 얻어탄 걸 굉장히 따뜻하고 훈훈하게 기억하던데, 그 시간동안 

그곳에서 지역 주민이 이용가능했던 경찰서비스를 공석으로 만든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아, 또 그거!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이 책에서 일부 상황에 대해서 설명만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 몹시 분노했다. 주인공이 곱게 전남편을 뒤로하고 짐을 싸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인격자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라면 멱살잡았을거다. 아침 샤워에서 찬물을 한컵씩 부으며 그걸 농담

이라고 생각하며 반복하고 있는 남자라니 용서할 수 없었을테다. 그런데 그 남자를 몹시 로맨틱한 남자로 생각하

더라고. 남자주인공이 잘 생겼나? 막 궁금해하고 있지만 지상에서 최고 잘생긴 남자가 해도 역시나 분노할테니까

이 영화는 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것. 불쾌한 광고가 있다. 나는 그런 광고들은 만드는 사람이 전부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이걸 보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불쾌해한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제작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게 오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다. 광고란 건 원래

찰나의 승부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리스크는 그 제품, 그 브랜드가 감당하는 것이고. 광고가 기분 나빠서 안

사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이건 앞으로도 유지할 셈이다. 광고는 광고주가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정권자로 소속되어 있는 곳에서 만드는 무언가를 나는 소비하고 싶지 않다.

몰랐으니까, 알고 그런 것도 아니니까 넘어가는 것만큼 이상한 건 없다. 무지는 무지한 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취향이 맞지 않고 생각이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들을 좋아한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재미있다. 그건 내 생각을 좀 더 또렷하게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내가 생각지

못했던 다른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도 나름 재미있게 봤었다. 많이 달라서, 이만큼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재미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