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맞다. 그 애니메이션이 만화가 된 것을 다시 읽었다.

애니메이션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러니까 그게 만화가 된 이 책을 갖고 있는 것이겠지.

그랬었더랬다. 감동도 받았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꺼내봤더니 이 무슨 대책없는 일이지...라는 생각에 먼저 휩싸였다.

홀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던 심성고운 학생이 최후의 늑대종족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늑대인간이라 피임교육이 덜 되어있었던 모양인지 덜컥 아기가 생긴다. 유키까지는 

그렇다. 실수라도 책임을 지고 건강하고 밝게 길러내면 되는거였다. 학교를 마치고 제대로 취업할 때까지

버티면 세 식구가 오손도손 살아갈 수 있다. 늑대아빠가 살림을 도맡는 방법도 있을테고.

하지만 두번째 아이라니. 아무리 애니메이션이고 만화라 해도 정도가 심했다. 일단 학교는 졸업은 어려워

진다. 엄마는 육아를 맡고 늑대아빠는 지금보다 일을 늘려서 4인 가족을 짊어져야 한다. 그러면 됐을텐데

덜컹 죽어버린다. 엄마는 때때로 늑대로 퐁퐁 변하는 아이 둘과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동물을 기르는

것이 금지되어있는 아파트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우리집에 동물이 있는지 증명해보라고 집을 오픈하고

강하고 뻔뻔하게 나갔으면 좋았을텐데 여전히 착하고 여린 엄마는 시골로 산이 높은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까지가 1권. 애니메이션도 봤고, 엔딩도 알고 있다. 앞으로의 어떤 일들이 기다릴지 이미 안다.

 

오랜만에 본 늑대아이 1권은 피임교육을 위한 교재로 쓰여도 될 것 같은 스토리였다. 내 감동이 어디갔나

싶었다. 대학 초년생, 20살 언저리의 사람이 얼마나 어린지 이제는 알고있어서일까, 감동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늑대아이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이라기에 현실보다 가혹했다.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는 것 같지도 않고 조력을 제공해줄 가족도 아무도 없고. 차갑게 바라봤더니 어째서 이 애니메이션에서

그토록 감동을 받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냉혹해보인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주는 것만 같고.

 

어쨌든 그게 오랜만에 읽은 감상이었다. 다음에 읽으면 또 어떤 감상일까. 이전의 그 감동이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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