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체르노빌 인근 마을 프리피야트다.
프리피야트는 원자력 발전소의 직원들과 그 가족이 대거 거주하는 곳이었다.
1986년 프리피야트에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78,000명의 사람들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삶에서 여러 가지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생기있고 건강하게,
그리고 여전히 소소한 행복속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은 왔고, 이곳은 억지로 잊혀진채 망령과도 같은 모습을 한 채
오랫동안 남아있게 된다.
그래픽노블이고 글 자체는 픽션이다.
하지만 실존하는 프리피야트에서 삶을 살았던 누군가가 겪었음직한 일을
기본으로 이야기로 구상하고 있어서 픽션임에도 현존감이 묻어난다.
수난 삼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스토리 라인이다.
딸의 부모, 딸 부부, 그들의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그 사건들에는
저 지역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다.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음에 이르렀고,
어떤 이들는 이 죽음의 땅에서 뒷수습을 해야했고 그 이후 오랫동안
격리된 채 배척당했다. 현실이 고되고 힘들어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다시 그곳으로 찾아들어가서 생활을 일궈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가족을 잃고 갑절의 무게가 된 삶을 살아간 이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비극이 자아낸 상실감에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이 단지 그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 즈음에 세계의 원자력 발전소의 개수와 지역이 나온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임에도 원자력 사고는 또 다시 일어났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는지, 그 사건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을지 잊지말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결코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자연재해에 의한 것이든, 인재에 의한 것이든.
그것에 대해 우리는 이제 뜻을 모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원전의 대부분이 그 나라의 동해에 해당되는 지역에 집중되어
지어지고 있다. 여론의 영향으로 중국은 내부 지역의 원자력을 허가하지 않았고,
그 결과 거대한 원자력 벨트가 해안을 따라 형성되고 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게되는 권역에 속해있다.
300~1000km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약 예기치않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 고통속에 시달리는 건 해안에 살고 있는
중국 사람들만은 아닐 것이다.
이 땅에 머물고 있는 우리 역시 감당하기 힘든 몫의 재해를 떠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병들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거대한 트라우마를 겪게 될 것이다.
이미 미세먼지를 겪고있지 않은가.
우리의 일이 되어버리면 이미 너무 늦은 게 될 것이 뻔하다.
원자력 사고와 관련된 문제에서 결코 우리는 남일마냥 방관해서는 안될 처지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리고 중국이 목표로 하고 있는 해안에 건립될 발전소의 수만큼이
우리가 당면한 위험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일테니까.
원자력 발전만큼 유용한 게 어디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원자력 발전소 뒷마당에 집을 짓고, 텃발에 채소 키워서 저녁 찬으로 내놓는 삶을
꿈꾸지 않는 건 분명하다. 발전소 부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전기사용량이 많다면 충분히 저런 말을 하고도
남는다. 사람은 대체로 남의 일에 쉽게 말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민감하니까.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가장 고통받는 건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곳에서 떠날만큼 여유롭지 않아서 거기에서 머물게 될 사람들일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들은 더 가난해질 것이고,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될 것이고,
피해자임에도 냉대를 받게 될 것이다.
비참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본 프리피야트에서 살았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짊어질 각오가 되어있는지, 이 모든 것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되어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제 원자력에 있어서 세계인들의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이다.
한 국가에게만 맡기기에 이 문제는 너무 큰 재난을 동반한다.
이 문제를 오로지 국가에게 맡기기에 개개의 국가는 너무나도 이기적이다.
고통당하는 건 사람들은 하나하나, 이 모든 문제를 공론화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설렁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플하게 먹는 즐거움 _ 도이 요시하루 (0) | 2018.08.21 |
---|---|
애초에 우리집엔 정원이 없다 _ 타치바나 카오루 (0) | 2018.08.20 |
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_ 이노세 아츠코 (0) | 2018.08.17 |
위험에서 살아남는 재난 생존 매뉴얼 _ 조셉 프레드 (0) | 2018.08.16 |
수험생 황금식단 _ 김민지, 김미향 (0) | 2018.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