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서열 1위의 고소왕과 도박하는 박여사였다.
각성한 고소왕의 최후도, 작가에게 법철학의 지식을 끌어내는 박여사의 담론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도 수긍이 가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실존인물이라니! 법학지식도, 법철학도 꽤 매력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이 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법철학 책이라도 좀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을 정도다.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라는 파트는 아이가, 아이의 부모가, 아이와 관련된 직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어려도 잘못된 일, 나쁜 일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다면 책임 역시 져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어린 나이 프리패스를 통해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의 벌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일단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피해자를 챙기지 않고, 가해자를 둥실둥실해서 어쩌자는 것일까.
가해자 성향만이 가득한 아이를 방치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길러내는 게 교육의 목표가 아니고서야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편의주의 때문이려나. 일하기 싫으니까, 번거로우니까 대충 넘어가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저 내가 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려나.
슬라보예 지젝이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말했다.
이 마지막 인용문구가 꽤 강렬하다. 지젝에 이 부분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느낀 점이 있다면 착한 사람은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것.
등뼈를 부러뜨려 골수까지 쪽 빨아먹기에 선량한 사람들은 너무나 쉬운 먹이감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더니 굳이 착하게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자신의 합리적 의심을 믿고, 달콤한 말과 억지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자들을 바퀴벌레인냥 경계하고,
나에게 해가 될 게 분명한 미친 제안을 하는 사람은 물어뜯고 내쫓아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데 범죄자들 역시 교육과 첨단기술을 이용해서 성장할 것이다. 그들의 먹이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방어로 일단 착하게 살지 말자라는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굳이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착해야 하는 것일까? 상식있는 교양인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것조차 안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인데 말이다.
스스로에게 손실이 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고, 해를 끼치는 인간과는 같은 공간에서 산소도 공유하지 말 것이며,
만약 경제적, 신체적 및 정신적 손해를 끼치는 범죄행위의 타켓이 되었다면 벌꿀오소리과 같은 기상으로 달려들어
그자를 박멸하자.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각오를 다지게 된다.
자신이 착한 사람류에 속한다면 이 책의 초반 부분을 정독하기를. 세상은 말간 얼굴을 한
교활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전혀 교류없이 살아야 평생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
피해자 예비군이 조심해야 한다니, 몹시 번거롭고 이건 아닌 것 같아 분하다.
벌꿀오소리와 같은 기개를 가진 사람들과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리라 믿고 싶다.
결국 정의는 승리할 것이고,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적과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법의 본질’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현재 우리가 겪고있는 사법의 문제점과 비판을 다루고 있다.
이 부분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유했으면 한다. 법에 대해서도 이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에만 멈춰서는 안 된다. 공통된 목소리로 틀린 것에 대해 끝없는 지적을 시작해야 한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정상인 것이다. 이상한 건 이상한 것이 맞았다.
권위나 엘리트주의에 밀려서 사법 역시 냉철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멈칫하게 된다.
법은 생각보다 실생활에 매우 가깝다. 결국은 우리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척도이니까.
잘못된 점이 있다면, 기괴한 구석이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인 우리가 감당할 수 밖에 없다.
‘사법부의 독립’이 국민을 멍청이 취급하는 게 아닐텐데, 가끔 헷갈린다.
국민에게서 독립하고 싶다는 것인지, 국민 위에 서고 싶다는 것일지.
이 책에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청소년에게 언질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책이야 말로 다독의 산물이 아닐까 싶었다.
다채로운 인용과 배경지식에서 그간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을 탐독했을지 짐작이 간다.
유머러스한 어조를 유지하고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도 380여 페이지를 금새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읽은 법조인이 쓴 책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고 말하려고 하기에는 읽은 책이 별로 없긴 한데,
어쨌든 재미있었다. 생각할 거리들도 많이 던져주고.
작가에게 배우고 싶은 점은 역시 ‘집요한’ 또라이라는 면모였다. 평범한 또라이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집요한’ 또라이가 되었어야 했다. 이 책을 보고 나는 각성했다. 이왕 또라이가 될 것이면 집요한 또라이가 되기로.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역시 전부 하고 살아야 하고, 치밀하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자신의 말과 생각을 관철하고 증명하는 게 나에게는 멋짐으로 다가왔다. 멋진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태도와 생활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제 남은 건 실천뿐인가! 조금씩 조금씩 정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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