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

 

데스클리닝에 대한 책이다. 데스클리닝이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죽음을 앞두고 하는

최후이자 대대적인 청소와 정리를 의미한다. 작가인 마르가레타는 인생에서 세 번의 데스클리닝을

경험했다. 어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한 마지막 정리를 경험하면서

에세이 형식으로 글을 남겼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공통점이라고는 지구에 살았던 시기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밖에 없는 나에게도 전혀졌다. 책의 멋진

점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고,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교류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장치.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번역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오랜 시간 동안 우리들은

그렇게 그렇게 만나왔다. 그리고 나눠받은 그 경험에서부터 우리는 시작할 수 있는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책을 통한 교류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게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이 책으로 나눠받은 경험은 최후의 정리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죽음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도 충분히 정리와 청소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리라 생각된다.

 

나는 이미 미니멀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게다가 최근에 이사도 했다. 이사는 미니멀을 위한 강력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이사는 미니멀을 위한 축제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다.

플리마켓에 참가했었고, 중나를 통해 낯선 사람과 거래를 했다. 버리기도 참 많이 버렸다. 

작가분이 말한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마지막으로 남겨두어야 할 사진정리까지 이미 한 상태. 

작가가 권유하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경험한 상태였음에도 이 책은 잔잔한 인상을 남기며 마음에

가벼운 파장을 남긴다. 

다섯 아이를 낳아서 길렀다고 한다. 그건 그만큼의 추억과 엄청난 양의 물건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걸 정리하는 과정이 침착하고 여유있게 그려져있다. 그 모든 걸 손에서 스르륵 놓는 과정이

작가만의 감각과 온도로 진행된다. 나의 미니멀은 치열했고 불타올랐었는데 그와는 전혀 반대였다.

사람마다 각자의 정리 방식이 있고, 그것이 온화하고 따스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척 멋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자신의 것이 아닌 물건을 정리했을 때 작가는 부모님의 비밀을 찾아낸 것 같다. 아버지의 경우는

비소였고, 어머니의 경우는 린넨서랍 깊숙이 숨겨진 담배였다. 작가는 그런 숨겨진 비밀은 모두 없애

버리는 게 좋다고 판단했고, 자신의 자식과 후손에게는 최대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은 스스로 지우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숨겨진 비소나 담배가 나에게는 숨겨야 할 비밀로 다가오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의지했던 무언가였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니면 다만 깜빡 잊고 처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사람이 다 그런거지 뭐, 라며 넘어가버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잊혀진 게 아니라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보루로 숨겨둔 게 비소와 담배였다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꼭 쥐고 있었다는 것,

담배가 무엇이라고 맘껏 위안을 누리지 못하고 린넨 서랍장 속에 꽁꽁 숨겨두었어야 했다는 것.

다만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워야 할 것들이 있다면 제대로 지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는데 처분하는 걸 깜빡하고 만천하에 드러난다고 생각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세상이

빙글빙글 돈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재빨리 처분할 방법을 모색해두는 게 어떨까 싶다.

비밀은 지켜져야 하니까. 그리고 그 비밀을 지켜야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이 책은 내용이 내용인만큼 대대적인 정리를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힌트가 될 듯 하다. 짐이 너무 많으면

짐에 짓눌릴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좋아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처분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이 책은 그러는 동안 겪는 심경이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사람이 들려주는 다정한 말이다. 그 따스한 말에 의지해서 차분하게 정리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든다. 모든 걸 끝내고나서도 살아있다면 최후의 최후에 쇼핑을 하겠노라

말하는 게 엄청 멋졌다. 나 역시 모든 걸 끝내고 나면 쇼핑을 할 생각이니까. 통했다는 느낌이었다.

물건을 정리해도 미니멀을 하더라도 물건을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멋진 물건을 만나 설레는 것은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역시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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